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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story342

죽음은 재탄생의 다른 이름 - <이집트-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확실히 현대인보다 과거의 인간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덜했을 것 같다. 게다가 죽음의 과정을 알고 있었다면 공포는 거의 없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체로 제정이 일치한 사회에서 믿음이 정치이고 정치가 삶인 인간이 태어나보니 권력자였다면, 세계관이 모두 인지된다면, 보이지 않는 사후세계마저 정의되어 있다면, 영광의 지속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지 못하겠는가? 만약 수많은 상징에 둘러싸여도 길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공동의 세계관이었다면, 다양한 세계관이 팽창하는 현대에서는 현대답게 수많은 신호에 둘러싸여도 길을 잃지 않을 참신한 이유를 마련해봄직하다. 마치 죽음과 재탄생을 동일시할 수 있는 검은 머리 짐승들의 사명인 것 마냥... 2022. 2. 16.
승려라 장인이다 - 전시 <조선의 승려장인> 이번 전시를 관람하면서 중국, 일본과 한국의 불교예술작품들의 주요 작자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은 원래 직업이 장인인 전문가, 일본은 계승받은 사찰 가문 중 전문 장인, 그리고 한국은 승려가 되어 도를 닦는 과정 중 하나로 장인을 선택한 승려. 도제로 이어졌을 테니 기술은 누적될 수 있다 하더라도 수양의 목적이었기에 좀 덜 정교할지도 모르고 좀 덜 클 수도 있으나,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통도사 팔상도의 밑그림 중 거대한 나무를 과감히 가운데 배치한 모습은 실제 '압도'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 지 알게 해준 것 같다. 확실히 불교는 스토리와 빌드업되는 내용, 상상가능한 체계 등이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까운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사진 말고도 괜찮은 작업.. 2022. 2. 12.
경로가 예상 외로 보편적이라 재탐색합니다 원래도 좀 그렇긴 하지만 최근 신화에 대해 몇가지를 정리하는 와중에 - 아무 관련성 없이 - 이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다. 사실 제목이나 기획의도에 따른 나의 기대는 1) 식민이 크게 작동할 것으로 보여 평소 접하기 힘든 원 주민들의 작품을 엿볼 수 있는 기회, 2)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국경 봉쇄까지 겪는 현 상황을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정도. 참고로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를 내 마음대로 정리해보자면 호주의 현 시대 작가들이 잡아낸 호주의 이미지들과 해당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드는 권력이나 지배구조를 살펴보는 것이다. 여튼 나는 전시의 의도와 관계없이 호주 본토 문화에 대한 보편성과 나의 무지에 대해 새로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최초 세상에 주로 등장하는, 세상의 .. 2022. 2. 7.
인간이라는 집합체의 동조 - PSYCHO-PASS 마이너리포트와 같은 세상에서 감시자와 집행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멀지 않은 미래에 범죄계수를 자동으로 체크하는 세상, 사이코패스 상태가 탁해지면 현장에서 사살될 수도 있다. 계수가 높은 사람들 중에 범죄자가 아닌 범죄를 잡아내는 자가 되고 싶다면 집행관이 될 수 있다. 다만 팀 내 감시관의 판단에 따라 역시 현장에서 사살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테러에 가까운 범죄를 저질러도 범죄계수가 일반인 수치로 떨어지면 감시가 해제된 일반병동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 절대 신뢰를 받는 절대정신이 존재하는 세상, 그게 설령 AI라 하더라도 지금이나 우화같이 받아들여져도 언젠가는 신화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누구나에게 받아들여진, 그러나 현재라는 시간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 반대로 비단 과거의 몇십.. 2022. 1. 15.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순삭 - 애니메이션 <Serial Parallels> 오랜만에 재미있는 사이트를 찾았다. https://www.zippyframes.com/ 몇몇 애니메이션은 실제 관람 가능하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사이트에서 본 애니메이션은 현재까지 단 한 작품, 뿐이다. 말도 안되는 고품격 노가다꾼의 솜씨로 인해 런닝타임 채워서 볼 것 같지 않았던 9분이 후다닥 가버렸다. 평생 서울에서 살아서 그런지 이런 고층 건물의 모습은 대체로 머물고 싶지 않은 형상이긴 한데, 희한하게 -관람에 가깝게- 보는 건 또 색다른 즐거움같기도 하다. 홍콩 view이긴 하나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빌딩숲에 익숙해진 21세기 도시민들의 공감대. 출처 : https://www.zippyframes.com/index.php/shorts/serial-parallels-max-h.. 2021. 8. 24.
고전이란 무엇이다 - 영화 <그린나이트> 고전을 그다지 즐겨 읽거나 보지 않는다. 나에게는 고전보다 신화학이 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희한하게 인문학 범주의 신화학은 나를 각종 이생물, 괴물, 전설 이야기로 잘 인도하고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서 굳이 구분자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전은 신화를 참조하고, 신화학은 각종 고전과 풍문과 이야기 속에서 설을 정리한다. 물론 스며들듯 책 귀퉁이를 차지하는 서로의 영향력으로는 나에게 체계적인 배움을 허용하지 않는다. 고전을 여전히 즐겨 읽거나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고전도 신화학만큼 흥미로워졌다. 그린나이트는 14세기 중세 후기에 쓰여진 영국의 서사시라고 하는데 아서왕의 조카이자 아직 기사가 되지 못한 가웨인과 녹색기사의 내기로 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중세영어본을 참조했을 지, 톨킨과 고든.. 2021. 8. 10.
본격 의학 학습 애니 ‘일하는 세포’ 피로 얼룩진 일상, 24시간 반복되는 노동, 끊임없이 도망치거나 끊임없이 해치우거나, 끊임없이 청소하거나… 암울한 자본주의 디스토피아 세상같지만 사실 세포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우리의 몸 속 사정이다. 찰과상 입어도 세상은 무너지고, 상한 음식을 먹어도 세상은 무너지고, 세포가 변형되어도 세상은 무너진다. 그래도 백혈구, 적혈구, T세포, 혈소판, 마크로파지, 수지상 세포 등이 이동하면서 무너뜨리는 녀석들을 없애고, 세상을 수복하고, 일상을 되찾는다. 비장하고 암울하게 표현했으나 ‘일하는 세포’ 시즌 1은 그야말로 순한 맛이다. (시리즈 여러 개이고 블랙버전도 있음) 그저 세포를 의인화한 것 만으로도 상황에 대한 상상이 풍성하게 쌓인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고도의 경.. 2021. 7. 29.
그렇게도 당연하게 힐링 - 바라카몬 잘 나가는 전문가, 찾아온 좌절, 인정할 수 없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적, 어쩌다 바뀐 환경, 조건 없는 포용, 과정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길, 그리고 새삼스레 중요해진 커뮤니티. 차도남이 도시에서 어쩌다 시골에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힐링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흐름은 꽤나 예상 가능하다보니, 한두편 보다보면 '또?'인가 싶기도 해서 완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따라서 막장드라마 스토리라인급의 스토리 전개 예상에도 집중은 일사천리, 마음은 몽글몽글, 공감은 구석구석 일으키는 애니메이션이라면 그야말로 훌륭하다 할 만하다. 바라카몬은 그렇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숲의 벌레든 바다의 생선이든 거주하는 집의 쥐든 손으로 잡는 건 불가능하고, 밥해먹을 줄도 모르고, 뒷산에서도 길 잃어도 실족사할지 모르는, 시골마.. 2021. 7. 24.
전형적인 ‘아는 만큼 보이는’ - 문호 스트레이독스 문호스트레이독스와 같이 캐릭터가 실존했던 인물들을 차용해오면 큰 장점과 큰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실제 이 애니메이션은 이능력자들의 전투물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인물들은 일본에서 꽤 유명한 문학가들이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이능력은 그들의 작품 내용을 차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호 관계나 취향에도 조금씩 실존 인물의 그것이 반영되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능력 '인간 실격'은 어찌나 찰떡인지. 일본 문학가들을 잘 몰라도, 도스토예프스키나 마크 트웨인, 피츠제럴드, 앨런포, 루시 몽고메리 등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문호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애니메이션은 원래의 스토리라인과 별개로 해당 문호에 대해 아는 만큼 그의 이능력이 매치된 모습을 볼 때 폭소할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 2021. 7. 17.
처음엔 지적 사치인가 싶었는데... - 미션임파서블 루벤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눈에 띄는 게 있어 간만에 극장행, 93분 러닝타임 중 아마도 80여분 전후까지도 황홀하게 감상 중이다가 마지막에 김 빠진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훌륭하다. 애니 속 등장하는 예술작품들을 한두가지라도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예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애니메이션이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 스토리가 너무 안 중요해져 다소 허탈하다 싶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심지어 시나리오상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스토리가 밀린 느낌이었을까? 이번에 새삼 나 스스로가 장르 복합을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장르들에 대한 편견에 가득찬 건 아닌지 고민에 휩싸였다. 예술작품들에 대한 .. 2021. 7. 13.
책을 버리려다가 - 비나리 달이네 집 책을 버리려고 했다. 작업 테이블을 점령한 그림도구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책장의 한 칸을 비워 그곳으로 옮기고는 꽂혀있던 책들을 다른 책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른 책장의 책들 중 버릴 책들을 솎아냈다. 그러다가 하드커버도 아니고 그림체도 꽤 오래되었을 법한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표지에 '글 권정생'이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바로 재활용 봉투로 넣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남겨놓을지 버릴지 결정하려고 한 장씩 슬슬 넘기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난데없이 새벽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보통 마음까지 닿아버린 글, 근사한 글, 멋진 글을 만나면 부럽고 따라 하고 싶지만, 이 글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건 이렇게 살아야, 인생을 쏟아.. 2021. 5. 29.
신선한 고전 - 나이브스 아웃 예전 홍콩영화를 미친 듯이 보던 시절, 세상세상 유명한 배우들이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도 아니고 최소 1년에 1번 정도 말도 안되는 코믹영화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라인업으로 출연하여 2시간 내로 실컷 웃겨주고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고급지게 골라골라 출연해도 감사할 것 같은 네임드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나오는 풍경이 한두 영화 아니라면 아마도 그 나라 영화 풍토에 기인된 거라 생각했다. 코믹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리고 영화는 죽었다 깨도 연출의 것이라 생각하는데, 놀랍게도 이렇게 모여 그렇게 찍으면 저렇게 유쾌한 영화가 나오는구나 싶기도 했다. 본 적 없는 배우가 거의 없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 그런 영화다. 하나같이 주연을 꿰차도 차고 넘칠 배우들이 세상세상 고전적인 방식의 탐정영화에 함.. 2020.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