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려고 했다.
작업 테이블을 점령한 그림도구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책장의 한 칸을 비워 그곳으로 옮기고는 꽂혀있던 책들을 다른 책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른 책장의 책들 중 버릴 책들을 솎아냈다.
그러다가 하드커버도 아니고 그림체도 꽤 오래되었을 법한 동화책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표지에 '글 권정생'이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바로 재활용 봉투로 넣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남겨놓을지 버릴지 결정하려고 한 장씩 슬슬 넘기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난데없이 새벽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보통 마음까지 닿아버린 글, 근사한 글, 멋진 글을 만나면 부럽고 따라 하고 싶지만, 이 글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건 이렇게 살아야, 인생을 쏟아부어야 나오는 글이다. 그래서 부럽지도 따라 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내 인생은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에 쏟아부어지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것만 알아도 글이든 그림이든 세상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그려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렇게 책 [비나리 달이네 집]은 내 책장에 다시 꽂혔다. 모든 걸 잊은 어느 날 다시 내 손에 닿으면 그때는 무엇을 생각하게 만들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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