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모, 거대한 눈, 말이 없는 마법사.


흘리는 눈물인지 

흩날리는 옷솔인지 

거대한 눈에서 펄럭이는 그것은 기대고 싶은 존재의 아우라와 구슬픈 감수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언제나 사람들은 마법사에게 도움을 빌고,

언제나 마법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마법사의 도움을 알아채지 못한다.


사람들이 멋대로 빌어버린 소망,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혜안의 부재,

그리하여 마법사가 받는 사람들의 저주.


혜안이 아닌 원망의 재주 밖에 없지만 사람들의 저주는 생각보다 강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마법사, 고통에 몸부림칠 날이 올거다.'

그렇게 저주는 마법사의 최후를 결정짓는다.


이보다 억울하고, 이보다 원통할까 싶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마법사로 상징되는 일군의 사람들은 결국 같은 생각과 같은 일을 반복한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숨 돌릴 즈음, 쉬이 생각하고, 쉬이 잊고, 쉬이 왜곡을 서슴치 않더라도...


그래서 비장하지만 찬란한 세상은 돌아가나보다.






* 사진출처 : 애니메이션 캡쳐


유럽단편영화제 섹션5. 가족의 탄생 中 <미끼와 바늘>


30년도 넘은 이력서의 사진에는 젊은 청춘의 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어느새 머리도 하얗게 새고 주름도 자글거리지만 그닥 추한 건 아니다.

정년퇴임이 가까워온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고, 넉넉하고, 

간혹 친구에게 삐치고, 잘못은 인정하기 어렵고, 

젊은 상사는 신경 쓰이고, 그렇다고 원하는대로 일을 해줄 기력은 없다.


평생의 노동 터전인 공장에선 근무시간 내내 CCTV가 돌지만,

평생의 노동 버릇인 흡연, 커피 한잔, 퍼즐 맞추기는 쉬이 끊어낼 수 없다.


결국 1,2,3차의 경고를 맞이한 끝에 두 친구는 공장에서 해고당했다.


그들이 해고당하기까지 노동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많은 딜레마를 안겨준다.

근속이 30년 넘은 이들에게 해고는 적합한 방식인지 고민하는 한편,

옆의 노동자가 그리 일하고 동일 임금 받아가면 열받을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늙음에 대한 패널티가 아니라 인센티브를 고려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특히 대한민국과 같이 지구상 최대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가진 나라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패널티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면 노후대책도 부실한 나라인데, 자본의 노동시장 대책은 세뇌를 포함하여 꼼꼼하기 그지없다.


두 친구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들은 평소 즐기는 행위 중 일부를 현재의 상황과 적절히 배치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행복했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를 조장할 그 어떤 의도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감독은 정말 순수하게 화이트 코미디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람하고 나면 정말 씁쓸함 만이 입가에 맴돌 뿐이다.


현실에서 그들은 창업하더라도 한시적이고 잘 되어도 공장이 직영을 모색할 터이니 그거대로 문제다.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모습에서 노동자의 희망은 요원하다.


나름 북유럽의 노동 복지를 꿈만 꿔서는 평생이 걸려도 희망에 맞닿을 성 싶지 않다.


최근 드는 생각은 무엇이든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점이다.

새삼 모든 민관 협력의 시초는 민민의 자발적 연계의 규모가 눈에 띄는 정도, 관의 역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정도를 넘어선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말도 안될 것 같은 작은 창업들과 새로운 물물교환들은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질 때 관의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출처 : https://www.facebook.com/eusff







개봉 당일 40여만명이 이 영화를 위해 극장을 방문했다.


-나의 오지랖이겠으나- BBC 드라마 '셜록'의 덕후들만을 위한 극장판이 어떻게 이런 인기몰이가 가능한가?

시즌2가 KBS에서 방영한 적 있는데 나름 공중파의 힘인가?


19세기 빅토리아시대와 현대를 오고가며 액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영화 속 19세기만 뽑아 보면 굳이 다른 시즌을 보지 않아도 상관 없으나, 

그럴거면 2시간을 영화관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지.

기본적으로 시즌물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더불어 시즌4에 대한 기대도가 있어야,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다.


마치 시즌4로 넘어가기 위한 스페셜 의식을 치루고 있는 기분이다.

집안의 모니터들에서 벗어나 바깥 바람 좀 쐬며, 신년 맞이 겸 자가 선물 겸 전세계적 이해집단을 형성하고, 다음 시즌을 위한 심호흡 한판 하라고... 



뱀발.

새삼 앞으로 시즌에서 모리아티를 셜록의 머리 속 인물로 만드는 건 아닌지 매우 근심걱정..ㅡ.,ㅡ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






개인적으로 <블랙딜>은 공공재의 의미나 민영화 1세대 국가들의 참혹한 실상을 확인했다기보다는,

'우리나라, 생각보다 괜찮구나'라는 찰나적 안도감을 주는 영화다.


아르헨티나 한 아파트의 전기가 끊겨 몇날며칠 주민들이 야밤 시위를 하고 있을 때,

칠레 연금수령 노인이 연금으로 생활 영위를 못할 때,

프랑스의 한 도시가 물 민영화를 했다가 다시 꾸역꾸역 공공재로 변화시켰을 때,

특히 영국 철도 관계자가 '한국보다는 못하겠지만' 영국 철도도 많이 좋아졌다라는 인터뷰를 할 때,

'한국이 살만하구만'이라는 -착각일지도 모르는- 생각의 늪에 빠진다.



물론 네이버 검색어 1위에 빛났던 '민영화'라는 단어는 -어느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수많은 공공 영역의 사유화를 추진하려는 권력자의 이리저리 찔러보기 행동이고,

이미 돈까지 많은 권력자가 또다시 벌이는 무한 부 축적 과정에 더이상 우리가 끼워맞춰지길 거부하는 방어 및 공공성 복구기제를 발동하도록 자극하는 의미도 있다.



사실 일일 100명 미만으로 이용하는 몽탄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할머니 한 장면 만으로도 공공재의 의미에 대한 설명은 끝난다. 오히려 이 영화는 민영화가 발생되는 이해관계를 규명하는 데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놀랍게도 민영화의 직격탄을 맞은 남미의 여러 나라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언제나 근사할 것 같은 유럽의 국가들도 예외없이, 민영화는 정부 고위 관리와 사기업 간의 냄새 풀풀나는 돈 거래가 반드시 존재한다.

반대로 상호 이익 창출의 고리가 없다면 사유화는 처음부터 언급조차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공공재에 대해 '공정과 투명'이 아닌 '경영'을 끌어들이고 '사회경제적,평등적 가치'가 아닌 '흑자 또는 적자 해소'를 논할 때부터 이미 그들의 거짓말은 시작된 셈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확률 낮은 예언가이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셈은 정확하기에, 또다시 중용되고 기업과 거래하고 그 사이 떨어지는 거대한 콩고물에 비밀스런 실적을 드높인다.

심지어 일부의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한 몇가지 사소한 장치도 함께 구비해놓는다.

예를 들어 대학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리지만, 장학 혜택은 많아져 '-그들 방식의 - 공부를 열심히 하면 돈을 세이브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것과 같이 말이다.

때로 영화 장면 장면 등장하는, 그들의 돈을 향한 단순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욕망은 썩은 미소가 절로 나올 만큼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다만 그들이 다루는 거래 물건은 거래로 쓰이기엔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삶인게 문제다.



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3인 3색의 칠레 대통령 선거 투표는 영화의 자못 중요한 핵심을 보여준다.


당신이 진보적일지, 보수적일지, 중도적일지, 왔다갔다할지 알 수는 없으나,

중요한 건 당신이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 선택, 그 행동이 무엇이든 말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둔해지는 건 몸 뿐만이 아니다. 

마음도 생각도 의지도 함께 둔감해지면, 어느새 이 사회 누군가를 해하는 가해자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우린 불과 3개월 전에도 엄청난 재앙을 맞이함과 더불어 초래했다. 

다 크다못해 늙어버린 어른조차 눈시울을 적실 수 밖에 없었던 세월호 사건은 미안하다는 말로 밖에 답해줄 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더불어- 산다면 꾸준히 생각하고 꾸준히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다. 

생각하다보니 힘들고 답답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다보니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듯.














  1. 아잇 2014.07.05 16:12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말씀을 듣고 나니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 아잇님 글 읽어주셔서 감솨~! 선택에 도움이 되어 뭔가 기쁩니다. 저랑 다른 점을 느끼시겠지만적어도 조만간 이렇게까지 정리된 전세계 민영화 요약판은 나오기 어려워요~



안타깝게도 나는 세계 사회 운동의 흐름이나 역사에 무지하고, 국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며칠 전 시사회를 통해 만난 1936년생 영국인 랄프 스테드먼과 그의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의 업적 또는 과오, 그들이 헤쳐나간 시대에 대해 논할 만한 능력이 없다.


다만 영화는 무척 잘 만들어진데다가 그의 그림과 스토리도 오묘한 조화가 돋보이고, 당연히 그의 그림은 멋졌고, 그의 조금 젊은 친구 조니 뎁부터 다른 모든 친구들까지 참 근사하게 살아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나 랄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1인칭으로 사고하고 그렸다는 책은 꼭 한번 보고 싶다.



스스로 '카투니스트' 정도로 불리면 될 것 같다는 랄프 스테드먼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펜 하나로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었다'고...

그는 매우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세대를 살았고 버티고 헤쳐왔다.

그와 친구들은 사회적, 정치적 풍자가 가득한 그림과 글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을 거다.

아마도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었다'는 확신은 '세상을 바꿔야 하는 의무'를 발현해야 했던 평탄치 못한 세상을 달리 표현한 문구일지도 모른다. 비록 이렇게나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부럽기 그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화 중간에 랄프의 이상한 친구들 중 한명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아래와 같이 말한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생각만큼 많이 바뀌지 않았고, 지금 세대는 쇼핑에만 관심 있고,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해외와 국내의 시대와 세대 구분은 상당한 차이가 있겠지만 - 

그러고 보니 목숨 걸고 운동해보지 못한 나도 2000년대 들어서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대중의 관심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동안 운동의 언어와 소통 창구를 바꾸어 어떻게 하면 대중인 척 노력하며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을 지 어리석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지 주관적 입장에서- 지독한 소강 상태가 지나고 난 어떤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대중은 완전 생소한 존재로 보였고, 그들의 운동적 관심사는 나의 옆길 같기도 했고, 운동 방식은 새로워져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대중과 구분되지 않고, -굳이 운동이라 붙일 수 있는 걸 할 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적당한 영역과 범위와 조화를 찾아 도모해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세상은 변화한다'는 기본 원리를 놓치고,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단절'로 제한해버리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물론 랄프의 친구는 충분히 위와 같은 말을 할만 하다. 그리고 그것조차 모든 세대가 세상을 바꾸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기폭제 중 하나다. 


최근 누군가에게서 지속되는 세월호 촛불 집회 속에서 청와대로 뚫고 나가는 20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운동은, 저항은 젊은 세대의 것'이라고, 아마도 80년대 학생운동 선배들이 지금 이들과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한다.



'쇼핑에만 관심있는' 완전체 세대는 없다.
때론 이전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때론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사회적, 정치적 행동을 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붉은 띠를 두르고 펜과 담배와 때론 유혈에 젖어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 세대의 눈 앞에는 다음 세대의 30cm 높이의 쇼핑백이 벽처럼 시야를 가린다 할지라도, 그 앞에는 사회와 국가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촛불과 추모의 리본이 있다.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 (2014)

For No Good R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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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찰리 폴
출연
조니 뎁, 테리 길리엄, 패트릭 고드프리, 리차드 E. 그랜트, 헌터 S. 톰슨
정보
다큐멘터리 | 영국, 미국 | 90 분 | 2014-07-10










원래대로면 영화 [더 콩그레스]를 보고 나서 디스토피아 또는 실현 가능한 미래사회에 대한 보고서 정도로 파악하면 된다. 게다가 실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절묘한 조화는 그림체보다 내용적인 조합에서의 케미가 높은 데 기인한다. 좀 더 추가한다면, [더 콩그레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에다가 존재의 객체성을 더욱 흐려놓은 개념이 추가된 걸 수 있다.



[더 콩그레스]에 대한 평을 보면 주로 앞은 약간 지루하고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섞이는 뒷부분을 다이나믹하게 보는 견해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상 이 속도감은 - 영화의 재미와 별도로 - 그냥 ‘올바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배우의 모든 걸 컴퓨터로 스캔하여 프로그램화한 ‘영원히 젊고, 별다른 인생 굴곡 없이 사생활 콘트롤이 가능하고, 엄청난 직업적 위험도 감수할 수 있는’ 배우를 만드는 것.

실체는 장기 계약으로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만, 한창 때의 미모와 인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스타성에 주목한다면 순간적으로 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처음 제안을 받을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지나갈 수 있고, 개인의 고뇌는 지루할 만큼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고민조차 안하고 ‘No’를 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언제나 자신의 주변 조건이란 건 피치 못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끝나고 나면, 모든 상황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빠르고 개인은 거의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영화의 시간대별 속도감은 개인이 느끼고 파악하는 감정과 생각의 속도감과 궤를 함께 한다.  


물론 이러한 패턴이 비단 배우라는 직업군의 고뇌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덫이 경계를 넓혀나간다. 마치 개인과 개인들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타의적인 집단 무의식의 북소리에 취해 춤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과 같은 요상한 기분을 맛보며 말이다.


이런 식의 몰이는 언제나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원할지도 모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어 무의식을 확 누르고 싶으면 수많은 개인들의 의식을 모으고 설득하여 제지해야 한다.


 



보통은 여기까지 생각하면 그만인데, 책 [해커 붓다]가 끼어들면서 머리 속 양상은 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이야기는 그저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전개될 뿐인 경고성 인간미래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 객체란 사실 없고 - 무한대로 팽창해나가는 집단적 지성 또는 꿈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일까?


보통 윤회를 받아들이면 모든 인간, 동물, 식물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때때로 인간은 식물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 모두는 흘린 눈물과 피도, 축적된 행복의 양도 어마어마한 존재들이다.

만약 일정한 순환시스템에 따라 객체가 지닌 무게는 떨궈내는 게 순환 시스템이라하더라도 무의식에 축적되는 경험은 마치 무게가 아닌 깊이로 환산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보다 열망- 이 든다.

전생에 따라 후생이 결정된다는 시스템에 따르면 이건 매우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붓다처럼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거다. 그저 객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지루하니까. 그 길이 꽃길일지 가시밭길일지 모른다할지라도...


하지만 난 그동안 공부해보지도 않은 불교에 대해 다소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판단했다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도 온갖 물질로 나누고 또 나누면 구성요소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구성요소들이 다 모인다해도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사실 인간도 6개월이면 모든 세포가 다 바뀐다던데, 그렇다면 6개월전과 현재의 나는 어떻게 하나의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걸까?

그러니 많은 종교들이 영혼, 또는 정신 등으로 부르는 것들은 어느새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 책에 따르면 - 영혼이라는 건 없을 지도 모른다. 불교에서의 윤회는 육체가 사그러들고 남은 영혼이 옮겨가는 게 아니란다. 무언가 발생한다면 그건 단지 요소들과 조건이 충족되었을 뿐인, 모든 것은 과정이다. ‘나’라는 단독 요소가 계속 유지되어 흘러가는 게 아니다. 애초에 나는 과연 6개월 전과 지금의 나를 무슨 수로 하나의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환상일 뿐이 아닐까?


결국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생각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일종의 환상일 수도 있다.

영화 [더 콩그레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은 꽤 있을 법한 요소에 따라 추적 또는 역추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 이야기 전체가 그저 주인공의 꿈, 내지는 주인공도 아닌 그냥 그 무언가의 꿈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네’라는 장자의 말이나,

전 우주라는 꿈을 꾸고 있다는 비슈누처럼 말이다.






해커 붓다

저자
김병훈 지음
출판사
반디출판사 | 2014-05-14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밝히는 안내서 ■ 정보과학의...
가격비교



더 콩그레스 (2014)

The Congress 
 8.2
감독
아리 폴먼
출연
로빈 라이트하비 키이텔대니 휴스턴코디 스밋-맥피존 햄
정보
SF, 판타지, 애니메이션 | 이스라엘, 독일, 폴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벨기에 | 122 분 | 2014-06-05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 http://movie.daum.net )








 

 


 

 

제 1 편.

 

미국과 모로코, 머나먼 거리를 떨어져 살지만, 세상에 그들만큼 사랑하는 사이도 드물다.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만큼 가늠할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들에게 결혼의 횟수라든가 함께 살 집이라든가 '주말엔 가족과 함께'와 같은 모토는 별 의미가 없다.
지구 반대편에 살아도, 10년에 1번밖에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영화 속 두 뱀파이어의 삶은 15세기인지 세기 전인지 몰라도 끝내 살아남아 21세기를 맞은 실로 평범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오래되었고, 많은 문화를 알고 직접 체험했고, 많은 이들과 접해왔고, 그래서 고상하고 풍성하고 아름답다.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라는 배우들의 특별한 매력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는 그 아름다움을 더욱 받쳐주고 있다.
영화 보기 전에는 캐릭터가 품고 있어야할 신비로운 아름다움의 아우라에서
톰 히들스턴이 틸다 스윈튼에게 밀릴 수도 있겠다싶었는데,
어떤 장면에선 톰 히들스턴이 더 돋보이기도 한다.
둘다 마치 유리마냥 아름답지만 깨질까봐 불안해보이는 느낌을 품고 있다.

 

실제 그들은 21세기까지 버틸 만큼 조용하고 안정된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삶은 그들을 살짝 배신하거나, 본능을 잃지 않게끔 작지만 치명적인 이벤트를 마련한다.

 

그들의 천재적이고 뛰어난 문화 감수성은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큼 고상한 상류층의 모습이지만,
피의 공급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그들은 바로 벼랑 끝에 떨어진다.

 

다들 알겠지만, 그들은 현대의 인간이 먹이를 먹을 때처럼 조리하지 않는다.
마치 불을 발견하기 전의 원시인처럼 먹이감에게 다가가 목을 물어 생피를 마셔야 한다.

 

시체를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게 된 21세기의 그들은
피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현대인과 조금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야하고
조금이라도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야하는데 노출의 위협은 점점 더 커진다.

 

무척 아름다운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턴이 위기에 몰리며 조금씩 변하는 외모는
그들의 신비롭던 모습이 흡사 괴물과 같은 괴이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더욱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매우 평범한 21세기 뱀파이어의 삶과 위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제 2 편.

 

이들을 뱀파이어만으로 바라봐도 크게 문제는 없으나, 사실 이들을 보면서 특정 인간 군상에 대입되어 보인다.

 

아담과 이브가 디트로이트의 음악 계보를, 기타의 역사를, 클래식을 음미하고 이야기할 때,
자가발전기를 직접 만들고, 우주의 은하계를 꿰고, 식물의 생태에 능통한 모습을 볼 때,
어마어마한 문화 소양과 인생의 여유와 깊이가 이 사회의 우아한 상류층으로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비단 외모 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내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아름답고 빛나고 친해지고 싶은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여유는 오로지 안정적인 피의 유통이 확보되어야 가능하다.
그들은 피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금방 괴이해지고 급기야 본능에만 충실해야 하는 금수의 상태로까지 떨어진다.

 

이들은 흡사 자본가라 불리는 집단이 피 대신 돈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닮았다.

그들은 실상 부자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고상하고 친해지고 싶은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돈의 굴레에 묶여 있으면 이미 돈은 목숨과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체의 수준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부족으로 인해 본능이 지배하는 수위는 높아져서, 어느덧 약간의 돈만 부족해도 주변인의 희생이 결코 아깝지 않게 된다.

 

limit가 정해져있는 소양, 고상, 우아, 여유.

 

'한계'가 지워져있다는 건 '자유'로워질 가능성을 거의 0%로 만든다.
그리하여 돈이 관련되면 자유로워지기 어렵나보다.

 

 

 

.......................이렇게 나는 두 영화처럼 보이는 한 영화를 보았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4)

Only Lovers Left Alive 
7.2
감독
짐 자무쉬
출연
톰 히들스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미아 와시코브스카, 안톤 옐친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 123 분 | 2014-01-09

 

 

 

* 사진출처 : 인디플러그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2576 )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예고편이 나왔습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05066&mid=22726)

 

 

포스터 보면서도 느낀건데 캐릭터 중에 '소각자'를 보면

장작, 연탄, 갈탄 등 다양한 종류의 난로가 생각나는데요.

 

트위터 SV-001/R님의 트윗보고 완전 빵 터졌습니다.

감독님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에 정말 닮은 갈탄난로가 있다네요.ㅎㅎ

꼭 함 보시길 --> https://twitter.com/SV001R/status/426578696862855168/photo/1

 

아마도 그 갈탄난로가 '소각자'의 기원이라 할 수 있겠죠?

 

뒤에 망토처럼 둘러진 철망, 앞부분에 눈처럼 보이는 부분도 꽤 유사하답니다.

뭔가 흔히 보는 것보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비범하고 고상한 난로의 자태라니...ㅋㅋ

 

 

사실 '소각자' 보면서 하나 더 머리 속에 떠오른 캐릭터가 있는데요.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7>에 나오는 '鋼筒' 입니다.

뭔가 애니에선 '아칸'인지 '야칸'인지로 들었었던 것 같은데 인터넷 사전에는 전혀 다른 발음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공식 홈에 있는 이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鋼筒'.

굳이 해석을 하자면 강철통일까요?

아래 이미지 붙여놨습니다.

 

<사무라이 7>에서는 악한 무리의 말단 조무래기로 나오는데,

저래 뵈도 저 안에 사람도 탈 수 있습니다. 날아다니기도 하고요.

('악한 무리의 말단 조무래기'라니, 제가 쓰고도 참 old하네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소각자'는 옆의 단독주택을 보니 적어도 집 2층 높이는 되는 거대한 아이(?)인데요.

<사무라이7>의 '鋼筒'은 인간 키의 2배 정도 되려나?

인간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기억에 내부가 많이 여유있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여튼 둘다 일자 몸통, 숏다리라는 매우 거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그러고 보니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는 우리별 일호 말고는 얼룩소도, 마법사 멀린도, 북쪽 마녀도, 각종 동물들도 다들 숏다리네요.

우리별 일호도 인공위성일 때는 숏다리였다고 해야 할까나?

 

모든 숏다리들, 화이링~! (^________^)b

 

 

 

 

 

출처 :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예고편 中

 

 

 

 

 

 

애니 <사무라이 7>에 나오는 鋼筒 - 출처 : http://www.samurai-7.com/character16.html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2014)

The Satellite Girl and Milk Cow 
10
감독
장형윤
출연
유아인, 정유미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어드벤처 | 한국 | 2014-02-20

 

 

 

1.

아래 그림, 뭘까~~요?

가로 세로 5cm 짜리 정사각형 명함 앞면입니다.

 

2월에 개봉하는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님 건데요.

일단 꺼내시는 순간 주변 사람들이 다들 구경(?) 모드로 변경.

사이즈도 그렇고 그림도 너무 귀엽고 최근 들어 가장 임팩트 있는 명함이었습니다.

참고로 '지금이 아니면 안돼'(http://www.nowornever.co.kr)는 감독님 스튜디오 이름,

사용된 캐릭터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여주의 초기 버전이랍니다.

 

 

 

 

 

 

 

2.

 

곧 2월이 오면 장형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개봉합니다.

얼룩소로 변한 사람, 사람으로 변한 인공위성.

배우 유아인과 정유미가 얼룩소와 인공위성의 더빙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워낙 예전부터도 '캐릭터는 순수하게, 메시지는 따뜻하게' 자신 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감독 작품들은

언제나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를 제대로 아우르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게 반드시 존재하거든요.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원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066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네티즌 평점 9.80 (2014.01.14 기준)
  • 애니메이션/판타지/모험 | 한국 | 2014.02 개봉 개봉
  • 감독 장형윤
  • 출연 정유미 (일호 목소리),유아인 (경천 목소리)

영화 정보 더보기

 

 

* 참고 - 유아인, 정유미 생애 첫 더빙 입맞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2월 개봉 확정!

http://www.indieplug.net/story/view.php?code=3&cat=47&sq=585

  

 

2013:12:18 18:36:18

 

 

 

 

3.

 

아래는 인디스토리 10주년을 기념하여 장형윤 감독이 제작한 영상입니다.

10주년이면 2008년이었을 텐데 캐릭터는 달라도 왠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와 비슷한 분위기.

5년동안 준비하셨다고 들었는데 진짜... 군요... 애니메이션의 길은 너무 먼~~~ 것 같아요.

 

 

 

 

4.

 

장형윤 감독의 전작들 중 . 다운로드도 가능~!

 

아빠가 필요해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829

인디애니박스 : 셀마와 단백질 커피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1040

 

 

 

* 사진 출처 - 명함은 스캔. 스틸은 인디플러그 (http://www.indieplug.net)

 

 


셔틀콕

Shuttlecock 
10
감독
이유빈
출연
이주승, 공예지, 김태용
정보
드라마 | 한국 | 107 분 | -

 

 

기묘한 가족 관계, 엮인 실타래, 풀리지 않는 궁금증.

길 위를 달리며 풀려나가는 이야기는 여느 성장 로드무비와 조금은 다른 종족이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면 나머지가 부족해도 좋은 영화로 남을 수 있다.

처음 보자마자의 감상은 배우들의 연기가 발군이었다는 점이다.

원래 이주승은 알려져있는데다가 군대말년에 걸쳐 찍었다고 하니 더욱 열심히 한 건지도 모르고,

누나로 나오는 공예지는 남자들의 로망과 같은 첫사랑 아이콘으로 나오다가 막판 이미지 변화가 드라마틱하고, 

이주승의 동생이자 로드무비의 동반자인 초등학생 꼬맹이 김태용군은 뭔가 연기학원에서 배운 티가 간혹 나다가 대부분 장면에서 그런 티를 지우고 완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어필되어 있다.

 

조금 더 곱씹다보면

배우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것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관객들의 생각 변화 자체를 이야기의 전개 방식으로 몰이해나가는 연출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조금씩, 이상하지만 정말 발생했을 지도 모를 실화인 듯, 이야기의 만듦새는 생각보다 촘촘하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 <셔틀콕>은 잘 만든 영화다.

 

그러나 한가지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했다.

 

원래 관객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이주승을 중심으로 누나 공예지가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섬처럼 존재하고

그 길을 가는 과정에 동생 김태용이 감초 내지는 간혹 연결자 역할을 하는 구도로 인식해야 대충 맞을 것이다.

 

그런데 막내 김태용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본인의 역할을 뛰어넘어 영화의 일정 부분을 장악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연기도 연기인데다가 유쾌하고 섹시하고 툭탁툭탁 다투는 합까지 보면 이 로드무비의 일정 구간은  두 형제의 애정 행각을 보는 기분이다.

 

차라리 그 화면이 도드라져야 하는 주제의 영화였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의 존재감이 더 강했다면 특별히 '오류'까지는 아니었을텐데,

왠지 관객인 나는 영화가 말해주는 주제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해버린 기분.

개인적으로 색다르게 기묘한 영화 <셔틀콕>.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http://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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