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그다지 즐겨 읽거나 보지 않는다.
나에게는 고전보다 신화학이 더 흥미로웠다.
그런데 희한하게 인문학 범주의 신화학은 나를 각종 이생물, 괴물, 전설 이야기로 잘 인도하고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서 굳이 구분자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전은 신화를 참조하고, 신화학은 각종 고전과 풍문과 이야기 속에서 설을 정리한다. 물론 스며들듯 책 귀퉁이를 차지하는 서로의 영향력으로는 나에게 체계적인 배움을 허용하지 않는다.
고전을 여전히 즐겨 읽거나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고전도 신화학만큼 흥미로워졌다.
그린나이트는 14세기 중세 후기에 쓰여진 영국의 서사시라고 하는데 아서왕의 조카이자 아직 기사가 되지 못한 가웨인과 녹색기사의 내기로 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중세영어본을 참조했을 지, 톨킨과 고든의 현대어판을 참조했을 지 모르지만, 확실히 고전의 힘을 잘 알고, 그 힘과 잘 겨루어 티가 나게 배치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다.
실제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평가가 극단적이겠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다.
솔직히 과한 칭찬은 얼마 전 본 영화 <미션임파서블 루벤>처럼 지적 사치의 발로인가 싶은 혐의를 갖게 하고,
과한 악평은 댓글평에 계속 언급되는 이 영화에 없는 ‘재미’의 정의가 무엇인가 싶은 혐의를 갖게 한다.
그런데 지적 사치로 넘기기엔 바로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수려한 문장은 영국인이 아닌 관계로 곱씹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이야기 전개가 단순해보일 수도 있는데, 그 빈 공백의 문장들을 화면과 배우로 대리 표현하고 있다. 특히 배우들은 굉장히 전형적인 캐스팅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을텐데, 기존 배우가 가진 분위기를 해당 캐릭터의 성격과 최대한 일치시켜 이상한 밀도를 높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재미없다’고 치부하기엔 이 묘한 분위기를 무엇이라 해야 할지 고민이고, 뭔가 장난스러운 문구조차 그 영향이 살짝 지연되어 도착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아마도 수입사가 배포했을 가이드영상을 참고할 수도 있는데, 가이드영상은 그야말로 가이드를 주기도 하지만 살짝 다른 방향으로 역가이드 하는 걸 수도 있다. 뭔가 영화에서 짚이는 장난들은 마치 이 가이드영상과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적 사치의 발로가 아닐까 내적 혐의를 두면서도 생각 외의 ‘재미’를 찾은 바 있어 - 과하지 않아도- 약간의 호평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유럽, 고전, 중세, 전설 등등의 키워드가 자신의 인생에 깔려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을 테고...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포스터는 ‘뭘까’ 싶기는 하다.
ps. 영화에 멀린이 안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가이드영상보니 멀린도 나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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