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이세계, 익숙한 엘프, 익숙한 영웅, 익숙한 드워프, 익숙한 설정, 익숙한 관계.
<장송의 프리렌>은 그 모든 크리셰 범벅같은 애니메이션이다.
낙관적 허무주의를 장착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애니메이션은 한번 보고 다시는 곱씹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으나,
왠지 글적이고 싶은 건 스치고 지난 후 뭔가가 남아서일 수도 있다.
나이로 표상되지만 결국 만물에 해당되는, '다르다'는 것의 진폭을 엄청나게 늘려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렴풋이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최소한 스승을 만난지 1,000여년은 된 엘프, 50년에 한번 오는 유성 만날 때까지 함께 한 모험가들과 이별을 고하지만 그녀에게는 딱히 이별도 아니다. 50년 쯤이야 눈 깜빡하면 끝나는 시간이니까.
그동안 함께한 인간 검사는 죽었고, 대략 25년 쯤 지나면 또다른 인간 성직자 역시 죽는다.
스쳐지나간 기억이라 오래 간직할 필요도 없으나,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인상적인 한 장면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누적의 시간보다 어찌보면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할 지도 모른다.
최근 누적된 세월로 인해 이해하고 이해받는 친구들이 늘어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패턴이면 새로운 친구는 요원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가 요원해보이는 건 누적된 시간으로 인한 평온함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을 많이 보내도, 평온이란 찾아오지 않을 관계 역시 존재한다.
진리가 없다고, 또는 인간으로는 깨닫기 어렵다고 인지한 그 순간부터
- 자주 까먹어서 씁쓸하지만 - 관계의 보편성이 아니라 관계의 다양성이 바로 나의 좌표였다.
세상의 누군가보다 내가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은 관계 맺게 되고
보편성은 이러한 관계의 고리들이 연결될 때 획득할 수 있다.
세상은 봐주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회관계를, 이를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관계를 들이밀지만,
실제 세상을 굴리는 유연성은 그 유연성과 다르다.
굉장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직진이
언젠가 포용이라는 단어로 언급되는 세상을 돌리는 유연성의 첫걸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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