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연이어,

지식채널e와 SBS스페셜에서 전형필 선생의 다큐를 보게 되었다.

 

문득 간송미술관에 있는 보물들이 궁금해졌다.

 

사진이라 실제 색이 이러한지 모르겠지만,

색도, 모기라도 미끌어질 매끈한 표면도, 기린의 웅크린 모습도 정제되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아름답기 그지 없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공룡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으며, 모든 새는 공룡의 후손으로 오히려 멸종을 부추기는 존재는 인간이라고...

기린도 원래 존재하였고, 아직도 그 후손을 볼 수 있다면 좋겠네.

 

 

 

 * 출처 - 공공누리에 따라 간송미술관의 공공저작물 이용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1,00650000,11&queryText=

 

 

 

 

 



5세기 신라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관모 장식이다.

확실히 금관총의 관꾸미개에 비해서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떨어지지만,

마치 거칠고 두툼한 매력이 무게감을 준다.



금관총의 관꾸미개는 얇고 수려한 라인 때문인지 날개와 같은 느낌이 확연한데,

황남대총의 그것은 마치 거대한 환상동물의 뿔과 같은 강력한 인상이다.












5세기 신라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팔찌이다.

'터키석과 회색, 흑색의 보석들을 박고 금 알갱이를 붙여 꾸민' 팔찌로 서아시아에서 전해진 걸로 추정된다는데,

딱 봐도 실크로드를 따라 터키 아시아 지역이나 중동 어디에선가 왔을 것 같은 모양이다.


실제 신라의 다른 팔찌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모양인데,

신라는 금 세공은 뛰어나나 보석을 박는 건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6세기 신라 진흥왕 16년, 서울 북한산 비봉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경주도 아닌 서울에 왠말인가 싶겠지만,

진흥왕이 영토 확장을 기념하여 세웠고 당시 관직제도와 인물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고 한다.


사실 국보 1호는 이전부터도 잘 알고 있었고 숭례문 자체가 사고, 사연이 많은 지라 쉽게 잊기도 힘든 국보이지만,

국보 2~5호 정도는 숫자상이라도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는데 순수비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앞부분이 많이 해져서 글자를 잘 알아보기 어려운 대신 옆 부분은 아직 글자가 살아있는 편이다.

그런데 매우 선명한 두선 가운데 뭉개져있는 글자의 줄이 있다.


쓰다가 잘 못써서 고치느라 그런건지, 

후대에 와서 세줄인데 한줄만 의도적으로 뭉개버린건지 궁금 (O_O)?










6세기 신라 노서동 무덤에서 나왔다.

금구슬과 곱은 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더욱 화려해보이는 이유는 금 구슬마다 나뭇잎모양의 수많은 장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 하나하나가 어우려져있는 숲,

또는 끊임없는 넝쿨을 연상시킨다.








5세기 신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으로 된 굽다리접시이다.

굽다리접시 == 고배 라고 한다.


토기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모양인데 그대로 금으로 본따 만든 형상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양에서 점점 다리가 짧아지면서 그릇이나 막걸리 잔과 같은 형태로 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8세기에 굽다리 접시는 완전 사라졌다고 한다.


전에 백제 금관장식 관련하여 살펴볼 때도 느낀 건데,

고대 유물은 대체로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거나 그대로 차용하여 물건의 모양에 적용한다.

굽다리 접시의 다리와 다리의 구멍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

초기엔 구멍이 없었다는데, 장식하다보니 생긴?

여튼 보물 626호처럼 2단으로 엇갈리며 배치되면 -가야식이 아닌- 신라식이라고 한다.









5세기 신라 황남대총에서 나온 은으로 된 합이다.

보물에 대해 정리해볼까 생각하면서 의외로 새롭게 안 사실은 국보건 보물이건 물품 하나가 아닌 게 꽤 많다는 거다.


원, 구는 완성체를 넘어 이상향, 신의 영역을 나타낸다. 

가 그릇과 뚜껑으로 나뉜 것이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뚜껑을 닫으면 합일되어 이상적인 구가 되는 것 같아,

합(盒)은 합(合)을 포함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


뚜껑의 나뭇잎 3개는 동양권에서 매우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과거, 현재, 미래 라든가, 천상, 지상, 지하 등의 구조를 상기시키거나

양, 남자를 상징하는 1과 음, 여자를 상징하는 2가 합쳐진 숫자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의미를 붙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으나 

유물의 모양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징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6세기 신라 금령총에서 나온 토기. 일반적으로 본 것과 살짝 모양이 다르다.

어깨에 대각선으로 뭔가를 메고 있고 오른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금령총의 주인은 매우 작은 어린이라는데,

이 토기는 어린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오른손에 방울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라고 한다.

말의 통달한 듯한 인자(?)한 미소라니, 열명의 도인도 부럽지 않네.










6세기 신라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말 탄 사람 토기.

아마도 술이나 물 주전자일 것 같은데, 

말이나 사람이나 눈을 감은 듯 쭉 째진 눈매가 사나워 보이기는 커녕 명상적이다.


표정만큼이나 무심하게 찰흙을 떼어붙인 듯 하고,

본래의 말보다 퉁퉁, 사람도 4등신 버전이지만,

주 목표가 주전자인 만큼 기능에 맞고 결과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사진에선 아기자기 귀여운 면도 있지만- 실제로 보면 색감 때문인지 왠지 작은 크기에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7마디와 9마디 목걸이 2종류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7마디는 국립중앙박물관에, 9마디는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해 보였는데, 기본 7,9 마디 수나 선을 이루는 줄기도 6각형, 둘러쳐진 10~11번의 감기 등 참 상징에 많이 언급되는 숫자들이 한가득이다.


숫자 7은 상징의 의미로는 뭔가 신비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 '지혜로 가는 입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무지개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관련 상징색은 아마도 자주색.


숫자 9는 완성, 꽉참, 비워지기 전 마지막, 마지막 신성한 수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징색도 모든 색을 흡수한다는 검정색이다. 


신라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수나 색에 대한 상징이 있었겠지만,

7이나 9 모두 본능적으로 신성과 결합하고 싶어할만한 왕족이 선호할만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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