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한권의 책을 끝까지 읽었다. 부끄럽지만 최근 몇년 사이 처음이었다.
지난 몇년동안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읽다보니 책 읽는 맛을 잃었다.
그렇다기보다, 원래 책 읽는 맛을 알 정도로 많이 읽지는 않는다.
사실 이 책은 주요 인물이 반복되나 이야기는 달라 단편마다 잘라 읽어도 된다.
그런데 왠지 이번에는 여섯편 모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다 읽어본 책이 필요했나보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내가 좋아하는 요괴 추리 소설가다.
소설을 잘 못 읽는 편인데 이 작가의 글은 좋아한다.
현실을 치밀하게 엮어가는 와중에 괴설이 일상인 양 녹아든다.
주요인물 중 몇몇은 말로 세상도 갖을 언변의 달인들이다.
읽다보면, 아니 듣다보면 화려한 말의 전개가 감동이다.
사실 <서루조당 파효>는 소품 같은 소설로, 추리 요소는 배제되어있다.
그러나 여전히 혹하는 입담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득 문장을 구성하고 과감히 분절해버리는 기술에 감탄한다.
동시에 단어의 뜻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사용하는 듯하여 스스로 부끄러웠다.
만약 아니라면 너무 알아서 막 써도 이 정도인 내공이 스스로 부러웠다.
물론 현실에서는 소설 속 어떤 인물을 만나도 모두 '꼰대'같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하나' 질려하다가도 문득 '내가 요즘 저러지' 싶은 아찔함이 밀려든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나의 질문보다 타인의 질문에 압도된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갱신은 타인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타인의 질문은 나의 소중한 기회다.
한 때 질문의 기술이 녹슬어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30년 전에도 40년 전에도 그다지 질문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질문받기에 용이하게 갱신 중인지도 모른다.
소설이 좋은 건지 소설 속 수려한 인물의 입담에 현혹된 건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무언가 현혹되면 어떤 시간을 쌓아야 그 인물이 될 수 있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하지도 않은 질문에 멋대로 답해주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지금 현혹된 것에 제대로 시간을, 인생을, 나 자신을 쏟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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