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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story

[글/시리즈] 마법돌 잡화점 ep 01. 산신의 주문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20. 10. 30.

(이야기의 세계관이 궁금하시면 아래 '돌의 기원과 마법돌에 관하여'를 먼저 읽어주세요.)

하얀 개의 해,  노란 토끼의 월, 검은 호랑이의 날

겨울 내내 청량함을 유지하던 대기가 봄을 맞이하며 촘촘한 먼지로 둘러싸였다. 유리 밖의 뿌연 풍경 사이로 안개를 헤치고 오는 듯 누군가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은 잡화점 문으로 다가오더니 ‘쿵’ 소리를 내었다. 입구 풍경소리와 겹쳐 꽤 요란하다.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쳐봤지만, 들어오지는 않고, ‘쿵쿵’ 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입구로 걸어가 문을 여니 한 손에 종이를 든 채 어떤 돌이 울고 있다.

‘돌이 울고 있네. 돌이 울고 있어.’
이곳에 머문 지 꽤 되었는데  우는 돌은 처음 보았다. 심히 놀라운 광경이라 잠시 멀뚱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눈 앞의 돌을 가게 안으로 인도했다. 
“들어오십시오. 여기 앉으십시오.”
잰걸음으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향로에 삼나무 향을 피우고, 주방에서 달맞이꽃 차를 잔에 담아 가게의 홀로 다시 나왔다. 여전히 울고 있는 돌의 자리 쪽으로 잔을 내려놓는 와중에도 물색없이 돌을 빤히 쳐다보았다. 손에 꼭 쥔 종이는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말문을 틔울 때는 아닌 것 같았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슬슬 코를 훌쩍거리는 정도로 소리가 줄어드니 드디어 대화를 시도할 때라고 생각했다. 
“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지요."
"산신님이 산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그렇군요."
산에서 돌을 집어가는 자들이 많아 돌 하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아쉬울 텐데 산신이 직접 나가라고 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돌이 거짓말한다는 게 좀 더 믿을 수 없다. 
“산신님이… 왜 나가라고 하셨을까요? 혹시 짐작 가는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
“저, 혹시 들고 계신 종이는… 제가 봐도 될는지요?”
돌은 여전히 훌쩍이며 나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하늘 얇은 동양지는 여러 번 접힌 데다가 돌이 워낙 꽉 쥐고 있어 구겨져있었는데 조심스레 펼쳤다. 굵기에 비해 꽤 질긴 종이다. 동양지 사이에 끼워져 있었는지 작은 쪽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일단 쪽지를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동양지에 적힌 글부터 읽었다.


‘해가 벌떡  풀이 나풀  바람 살랑 산에 깃든…’


산세를 모두 담아 시작한 문구, 주변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조망, 그들을 위한 무한대의 기원, 이 글은 산신의 최상급 주문서다.  
거기다가 울 줄 아는 돌, 아마도 마법돌이 되면 무엇도 반드시 성취될 수 있는 조건이다.
쪽지를 펼쳐보니 산신이 보낸 전언이 적혀있다.

‘천장산에 한때 불순한 기운이 가득하여 힘겨운 나머지 세상사를 잠시 잊고 제 몸 추스리기 바빴으나, 얼마 전 사람 마을이 나를 부르니 웬일인가 싶어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보았다네. 그 사이 천장산은 사람 신들이 신경 써준 덕에 맑아졌으나 사람 마을은 역병에 고생인 듯하여 작은 마음을 내어볼까 싶었다네. 측은지심이 넘치는 돌이 하나 있어 다른 돌들과 문득 다르니 산에 기거하기보다는 크게 쓰일 방법이 있을 듯하여 자네에게 보내네.  내 무척 아끼는 이라 그대에게 특별히 부탁하니 부디 좋은 기운과 좋은 삶이 되도록 인도해주시길 바라네. 

-언제나 이름 없는 그대를 존경하는 진실한 친구로부터’


종이를 다시 접으니 맞은편 돌과 시선이 마주쳤다. 총기마저 느껴지는 돌의 눈빛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긴장이 서려있다. 돌이 쳐다보는 이 감각 역시 오랜만이라 무척 낯설다. 여러모로 독특한 돌이다. 산에 머물기만 해도 산세를 든든히 받쳐줄 만하다. 산신이 작은 마음을 내었다 적었으나 겸손하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산신은 사람 신들을 위해 아주 큰 마음을 내어주었다.
“천장산신님께서는 당신을 무척 아끼십니다. 당신의 기운을 어여삐 여겨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큰 일을 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동양지를 접어 돌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산신님이 당신을 위해 남기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평생 그 글과 함께 하시게 될 겁니다.”
“산신님이 화난 게 아니에요?”
“산신님은 전혀 화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산신님의 능력도 나눠주셨답니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산신님의 능력을 나눠 받으면 산신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답니다. 그 능력으로 마법돌이 되시는 겁니다.”
“마법돌이요?”
“네. 마법돌이 되어 여행을 다니시면서 요즘 역병에 시달리는 사람 신들에게 역병을 다스리며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산신님이 바라시는 일입니다.”
돌의 눈은 여전히 나의 눈을 향하고 있으나 그 너머의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다.
‘돌이 고민하고 있네. 돌이 고민하고 있어.’
“그리고 가끔 산신님이 보고 싶으시면 천장산에 들르셔도 됩니다.”
“진짜요?”
“물론입니다. 그럼, 이제 마법돌이 되어보시겠습니까?”

 

 

더보기


산신 주문서 마법돌 만드는 방법

깨끗이 씻은 돌을 마련한 뒤 얇은 한지에 붓으로 모두의 무탈을 기원하는 산신일기를 적는다. 산신일기는 일부만 적어도 기원의 효과가 있으며, 기원하는 내용을 변경해도 효력이 발생한다.
다 적은 산신일기 한지를 곱게 접어 돌보다 살짝 큰 크기로 만든 후 그 위에 돌을 괴어놓는다. 

산신일기


해가 벌떡  풀이 나풀  바람 살랑 산에 깃든      목련이 비호하고 개나리가 비호하는
천장산 한자락에 마을을 굽어보니                  마을 사는 오방신들 왠일인가 분주하고
천장산신 옷자락이 펄럭펄럭 휘날리며            산꼭대기 바위자락 산신님이 나타났네

어디보자 살펴보자 천장할메 부르는자           어디보자 살펴보자 잠시못봐 격조했네
오랜만에 몸을 들어 산세 한번 둘러보고         오랜만에 팔을 뻗어 햇님별님 인사하고
슬렁슬렁 발을 뻗어 산중턱에 내딛이니           이것 참 반갑구나 마을신들 다 모였네

어이쿠 우리아이 세상살이 어떠했누               단단하게 우직하게 천년만년 살고지고
걱정일랑 무엇이냐 좌절일랑 먹는거냐            세상걱정 원망눈물 모르거니 했었는데
우리 새끼 약해졌나 우리 새끼 일희일비         좋은 마음 어디 쓸까 옳다구나 들어주마

어두운길 헤매일 때 너의 길을 밝혀주마         배고플 때 목마를 때 천장산에 기대보게
작아져도 좋은 마음 숭풍숭풍 나눠주고          들썩들썩 힘을 얻고 찰랑찰랑 채워내게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리고 글을 쓰고            모인 이들 원하는 거 모두 모아 이루거라

 

돌의 기원과 마법돌에 관하여 


마법돌 주재료 돌 

돌은 대체로 나이나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오래 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리적인 크기가 현격히 줄어든다. 어느 학자는 돌이 처음 태어났을 때의 물리적인 크기보다 보통 만 분의 1의 크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긴 했으나 돌이 살던 지역이나 자연환경, 풍속 등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점도 함께 명기해놓았다. 
돌은 크기가 변하거나 누군가의 손으로 변형이 일어나도 실제 자신이 타고났던 크기만큼의 영향력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돌의 엄청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생존에 대한 갈급함이 없어서인지 무척이나 성격이 느긋하고 본인에게 위해가 가해져도 생명 유지에 지장이 없는지라 ‘가혹한 행위’에 대한 감각이 둔하다. 실제 돌은 타 존재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행위도 본인들에게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이치에 둔한 자들은 돌을 아둔하고 마음대로 조정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돌 자체에도 에너지가 있으나 실제 스스로를 위해 쓸 일은 별로 없어, 오히려 타 존재가 이 에너지를 이용하여 특정한 효과를 누리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 자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마법돌 

마법돌은 태초에 즉각적인 방어가 불가능한 팬데믹을 약화시키고 액막이할 수 있는 거창한 의도의 물품으로 고안되었으나 점차 소소한 소원이나 방어에도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용도가 확장되었다. 
마법돌은 어떤 존재의 진심이 담길 때 그 효과를 볼 수 있는데, 보통 존재의 진심이 물건에 잘 깃들여지는 경우가 효력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마법돌을 제작하는 행위가 마법돌을 사는 가장 강력한 거래 대가이다. 
거래 대가를 지불하고 마법돌을 산 자 중에는 자신이 돌의 소유자로 언급하기도 하는데 실제 돌이 마법돌로 변했다고 해서 돌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사실상 마법돌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법돌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여 존재할 뿐이다.  


마법돌 잡화점  

마법돌 잡화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돌들이 보기 드물게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또는 다른 존재들의 의도로 인해 마법돌이 되었을 때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마법돌의 거래 대가는 자신의 진심을 담은 마법돌을 만들어 잡화점에 제공하는 것이므로 실제 판매뿐 아니라 공방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한다.
간혹 마법돌이 되기 전 돌이 찾아와 마법돌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잡화점의 주인은 너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소 언변이 좋고 본인보다 오래된 존재로의 돌들에게 매우 예의 바르다. 원래 말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돌들이 워낙 말이 없다 보니 세상 물정도 알려줄 겸하여 잡화점 내에서는 가장 말이 많은 존재가 되었다. 너구리 치고는 풍채가 빈약하고 얼굴이 크고 손발은 뼈마디가 보일 것 같이 가냘파서  병들고 예민해 보이나 실제로는 건강한 편이며 일처리가 깔끔하면서도 정감 어린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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