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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애니메이션] 학살기관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17. 12. 24.


1.

요절한 작가 이토 케이카쿠.

필명 자체가 계획(計劃)인 이 작가는 단 두 편의 소설 [학살기관], [하모니]와 한편의 프롤로그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한편의 프롤로그는 친구가 마무리하여 [죽은 자의 제국]으로 완성.

사후 5년, 그의 이름대로인 이토 프로젝트가 발동, 세 편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 강렬한 작품을 남기고 간 천재작가에게 바치는 남겨진 예술가들의 가장 멋진 추모 중 하나. 


이토 케이카쿠의 세계는 전쟁과 폭력,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상이 맺혀져있다. 그 상은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본래 일컫는 '자유'에 대한 박탈을 전제로 한다.

애니메이션 [학살기관]은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기관별로 분석되고 통제의 가능성을 띄기 시작하는 근미래 초창기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애니에 등장하는 학살의 왕, 그가 스쳐가는 곳에 대량 학살이 일어나는 장본인은 유능한 언어학자로,

끊임없는 학습의 결과 인간에게 내재된 근본적인 학살기관과 그것을 조정하는 언어를 얻었다. 

그 언어는 아직까지 인간 외부의 시스템인 약물이나 심리치료보다 강력한 단계이다. 


2. 

대테러사건 이후 개인정보를 모두 내놓고 안전사회 구축에 일상을 담보 잡혔지만 크게 답답하지는 않은 이유, 해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란은 국민들의 안전 지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이해와 몰이해가 공존하는 이슈는 타국의 내란에 개입하는 국가의 자세다. 해당 국가는 미국으로 설정되어 있어,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 체제에 익숙한 분단국가출신은 이다지도 체계적인 내란 개입의 필요성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는다.


이쯤되면 흡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도 담겨있을 것 같지만, 

사실 난 이 애니메이션을 애정의 발로로 보았다.


외국의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감정 조정을 받고 각종 약물로 인명을 해치는 데 대한 죄책감을 지우는 동안에도, 

자신이 불렀던 이름의 소유자, 안좋다는 정크푸드와 다국적기업의 커피 메이커가 그리워지고, TV 속으로 영혼이라도 내줄 것 같이 몰입하는 사람들이 

자신과의 동질감을 느끼는 그 어딘가의 신체기관을 통해 지켜야할 존재들로 각인된다.


안타까운 사건에 가족을 잃어도 가족과 같은 국민까지 잃을 수 없다는 감정,

이국의 땅에서 미성년에게 아무런 감정 없이 총뿌리를 들이대도 이로 인해 자국의 누구도 전쟁의 상흔을 겪지 않게 될 거라는 애정.


학살에 대한 감각과 인간에 대한 애정은 매우 불합리하게 상존한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고민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인류애와 그로 인해 파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은 인간의 기본 패키지와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특정한 절차나 과정을 거치면 루틴하게 끌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가정 속에서 인간의 객체성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로 흘러가는 정도(正道)에 방향타 노릇을 하는 집단 의지의 일부로 그 역할을 인정해야 할 것인가?



언젠가는 한번쯤 해볼법한 우려에 대해 답하는 납득 가능한 이야기와 전개.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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