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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story

[글/시리즈] 도철(饕餮)_#03

by jineeya 2015. 7. 17.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3.27.


한참을 벗어나 결국 숲으로 다시 돌아와버렸다.

원래 나의 혈족들은 모두 숲을 싫어한다.

햇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특히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과 바람의 조합은 쥐약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숲에 들어가는 걸 허용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인가 이문이 포뢰와 더불어 나를 데리고 숲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필시 먼 곳을 보다가 드넓은 녹색 솜뭉치들의 정체가 궁금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셋은 그리 깊이 발길을 옮기지도 못했다. 숲의 입구에서부터 녹색잎과 나뭇가지들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자 포뢰가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평소 고요하고 잔잔하던 소리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비명이었다.

이문을 바라보자 일그러진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결국 이문과 나는 포뢰의 양쪽 어깨에 팔을 걸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머니는 불과 같이 화를 내셨고, 특히 이문은 무섭게 혼이 났다.

더불어 그날 어머니는 모든 자식들을 불러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만약 피치 못해 숲을 가로질러 이동해야 할 때는 반드시 상자 또는 지붕이 있는 들 것을 이용하고, 숲 안에서 기거하게 될 경우 역시 지붕이 있는 곳 또는 나무 그늘이 없도록 주변 나무가 잘린 곳에 기거하라고...

사실 나는 숲에서 시원한 산들 바람과 나무 그늘을 지나면서, 그대로 풀 속에 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른함, 포근함, 향기로움...

전사이자 수호자인 혈족에 허용되지 않는 게으른 감정. 

그래도 포뢰와 이문이 그렇게까지 이 감정에 공포를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런 격렬한 공포를 맛보지 못한 것은 역시나 게으르고 부족한 천성 탓인가?


이곳으로 쫓겨온 이후로 오히려 간혹 숲으로 간다. 

나른하고 포근한 그늘이 나에게 진취성과 생존을 위한 경계심을 흐트러뜨리지만 그래도 달콤하기 그지 없는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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