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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story

[글/시리즈] 도철(饕餮)_#02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15. 7. 9.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3.19.

나의 이촌(二寸)1)들은 겁쟁이다. 아니, 게으른 건가?
순제의 궁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한 번 몸짓에 천리를 가는 용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
황제가 보이는 제 어미에 대한 호의에 자식들이 먼저 반응했다.

앞다투어 경쟁하듯 순제의 심금을 울릴만한 제의를 내뱉었다.
'사후를 지켜주겠다', '궁의 파수꾼이 되어주겠다', '독약으로부터 황실을 지켜주겠다', 
'소리 질러 귀신을 쫓아주겠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쓸모 있을 법한 일을 열심히 찾아댔다. 그렇게 보였다.
찰나의 안위를 위해 종마처럼 달렸다. 그렇게 보였다.
결과적으로 꽤 바빴다. 그렇게 보였다.
어리석었다. 그렇게 보였다.




 1) 도철과 이촌들


도철(饕 탐할 도, 餮 탐할 철) 

용의 다섯 번째 자식. 
먹고 마시는 걸 즐겨 잠시 눈을 떼면 솥뚜껑이나 술잔에 코를 박아버리는 경우가 즐비하다.
'자신의 몸통까지 먹어치워 얼굴과 뿔만 남아있다', '순제에게 쫓겨났다', '더 많이 먹으려고 농작으로 유명한 염제 신농의 나라로 떠났다'는 등 소문이 무성하다. 
최근엔 그를 직접 본 이가 없다 보니 들려오는 이야기도 괴기소설마냥 해괴망측해지고 있다. 


용(龍 용 용)

성정이 불 같으나 세상의 이치를 알고, 
타인에게 무심하나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해치우는 편이라, 
만인에게 신의를 아는 존재로 각인되어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게으름을 느긋하고 통달한 도인의 품격으로 오인하고, 
아홉 자식들도 덩달아 어여삐 여겨 종종 자신의 물건들에 그 모습을 새겨 넣기도 한다.


비희(贔 힘쓸 비, 屭 힘쓸 희)

용의 첫째 자식. 
힘이 장사이기도 하지만 힘 자랑도 즐긴다. 
세상을 구성하는 초석인 돌만 보면 번쩍 들어 중력을 거슬러버리니 돌들이 화가 날만도 하다. 
키도 잘 안 자라고 납작한 자라 용모이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데,
용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돌을 번쩍 들고 있는 건지 돌에게 깔린 건지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이문(螭 교룡 리, 吻 입술 문)

용의 둘째 자식. 
용모는 어머니와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나,
수줍음이 많고 항상 높은 곳에서 먼 곳 바라보기를 즐겨 정확한 모습을 본 이가 극히 드물다. 
순제 시절부터 주로 궁궐의 지붕 처마 위에 머무는데, 움직임도 거의 없다 보니 돌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한 소문에 의하면,  돌이 될 것을 직감한 이문이 비희의 힘 자랑을 피해  중력을 가장 거스를 만한 장소에만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


포뢰(蒲 부들/창포 포, 牢 우리 뢰)

용의 셋째 자식. 
이문처럼 어머니를 닮았으나 성격은 영 반대다.
수줍기는커녕 소리 내는 걸 즐겨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 
주변의 질타가 심해지자 주로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말을 걸 때만 소리를 낸다.


폐안(狴 짐승이름 폐, 犴 들개 안)

용의 넷째 자식. 
호랑이를 닮았고 힘도 세다. 
어머니의 용모와 가장 거리가 멀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다만 그 능력만이 강력한 나머지 정의감이 과하여,
감옥에 죄인을 가두고 희롱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모습에 변태 기운이 다분하다.


공복(蚣 지네 공, 蝮 살무사 복)

용의 여섯째 자식. 
자식들 중에서 가장 특이하게 물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어릴 적 공복이 물 근처에 가는 걸 무섭게 혼냈으나, 
강의 아름다움에 미쳐 '풍덩' 빠진 이후에도 별  문제없자 내버려두기 시작했다. 
순제의 궁에 머물면서부터 다리 기둥에 주로 기거하고 있다.


애자(睚 눈초리 애, 眦 노려볼 자)

용의 일곱째 자식. 
성정이 불과 같고 몸 쓰는 싸움을 즐긴다. 
찔리거나 베일만한 물건이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새겨주지 않아도 쥐도새도 모르게 스며든다.
세상의 모든 폭력성이 삶의 목표인 양 생활을 영위한다.


산예(狻 사자 산, 猊 사자 예)

용의 여덟 번째 자식. 
어릴 적부터 어미가 내뿜는 불을 동경했으나 실제로 본 건  단 한번 뿐이다. 
하지만 한번의 경험은 대단한 감동이었나 보다. 
현재까지도 불이나 폭죽에 홀려 향로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문처럼 말을 걸어도 대답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다.


초도(椒 산초나무 초, 圖 그림 도)

용의 아홉 번째 자식. 
유독 욕심이 많은 막내다.
어릴 적에는 먹을 걸로 항상 도철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재물 보관처가 존재 최대 관심거리가 되었다. 
몸의 특성 중 다른 이촌(二寸)들과 달리 항문이 없어 입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배출하지 않는다.
다 컸다싶다가도 가끔 먹을 것 이외의 것도 입으로 가져갈 때면 영락없이 구강기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애다.
더러운 냄새 폴폴 풀리는 녀석이지만 예상외로 지킬 게 많은 무리들은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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