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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tory

집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다 - 최치원 풍류 탄생展

by jineeya 2014. 10. 9.



리플렛에 의하면 최치원은 도착신앙인 무(巫)와 유,불,도교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원형을 풍류로 정의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최치원의 그것이 아니라 현대의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 직접 탐사하고 해석하여 새롭게 창조시킨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최치원의 발자취를 직접 쫓는 과정에서 탁본이나 그가 실제 즐겼을 풍류가 담긴 것으로 보이는 보물 역시 몇 점 있다.

이런 작업들을 보는 건 평소 감성에 치우쳐 전시를 관람하던 때와 다르게 생각보다 지적 즐거움을 배가한다. 당대 지식층을 대변하고,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문물을 접한 인물을 다각적인 방향으로 검토한다는 건 꽁꽁 숨겨진 보물이야기를 구전으로 듣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런 경우 흥미진진한 감동을 위해선 주인공보다 오히려 화자가 꽤 중요하지만…


실제 최치원 자체에 대한 행보와 남긴 작품들을 보여주는 탁본, 기록물 등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내가 최치원에 대해 좀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거나,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된 전시인 만큼- 서예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라면 이 전시부분의 무한 매력에 빠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다양한 작가들이 풍류를 다루는 작품들은 눈길이 갔다. 처음엔 풍류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표현을 만끽하고 있었으나, 곱씹어보면 이 다양한 표현방식의 원점에 한 인물의 자취와 시문이 깔려있다는 것도, 모든 작가들이 한 인물에 초점과 집중을 바쳐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도 –이런 기획의 전시라면 당연하겠지만- 놀라운 최치원의 힘이다.


최근 다시금 집중의 효과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경험 레벨이 올라가다보면, 또는 올라갔다고 착각하다보면 수많은 일들에 주의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집중하지 않아도 능숙해졌다고 생각해볼 수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뻔하게 정해져버리는 것들이 많아진 탓이다. 아무리 익숙한 일상이라도, 작업이라도, 협업이라도 언제나 그 안의 사고나 실행방식등은 가변적일 수 있다. 물론 특히 요즘과 같은 시절엔 사회적인 이슈가 워낙 상식 밖의 가변성으로 작동하고 있어 구성원들의 집중력을 쓸데없이 소진시켜버리는 무모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이러한 집중이 사용될 용처는 따로 있다. - 동양인으로서 내재된 의미 파악 능력에 안주하여 풍류나 무속 따위를 듬성듬성 듣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 인간의 본질이나 의미를 위해 심사숙고할만한 주제가 문화예술적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랜 기간 특정 주제에 집중하는 나의 자세가 절실한 때이다



김종원 [해동풍류도종최치원] (2014)




서용선의 [입산] [출세] (2014)




이길우의 [서로 다른 개념의 두가지 치유] (2014)




황재형의 [역사는 선비와 함께 흐른다] (2014)




최정화의 [신빨 용됐네] (2014)




최정화의 [숨 쉬는 꽃] (2014)




유승호의 [일즉사 다즉일 중중무진: 어쭈구리 제법연기 좀 하는데!???](2014)




박병춘의 [낯선, 어떤 풍경- 가야산홍류동계곡] (2014)




이돈흥의 [최치원 시 촉규화(蜀葵花)](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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