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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존재는 규명이 필요할까? 모든 건 거대한 과정일 지도... - 해커 붓다와 더 콩그레스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14. 6. 15.







원래대로면 영화 [더 콩그레스]를 보고 나서 디스토피아 또는 실현 가능한 미래사회에 대한 보고서 정도로 파악하면 된다. 게다가 실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절묘한 조화는 그림체보다 내용적인 조합에서의 케미가 높은 데 기인한다. 좀 더 추가한다면, [더 콩그레스]는 [매트릭스] 시리즈에다가 존재의 객체성을 더욱 흐려놓은 개념이 추가된 걸 수 있다.



[더 콩그레스]에 대한 평을 보면 주로 앞은 약간 지루하고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섞이는 뒷부분을 다이나믹하게 보는 견해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상 이 속도감은 - 영화의 재미와 별도로 - 그냥 ‘올바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배우의 모든 걸 컴퓨터로 스캔하여 프로그램화한 ‘영원히 젊고, 별다른 인생 굴곡 없이 사생활 콘트롤이 가능하고, 엄청난 직업적 위험도 감수할 수 있는’ 배우를 만드는 것.

실체는 장기 계약으로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지만, 한창 때의 미모와 인기를 유지하고 싶다는 스타성에 주목한다면 순간적으로 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처음 제안을 받을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지나갈 수 있고, 개인의 고뇌는 지루할 만큼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고민조차 안하고 ‘No’를 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언제나 자신의 주변 조건이란 건 피치 못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끝나고 나면, 모든 상황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빠르고 개인은 거의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영화의 시간대별 속도감은 개인이 느끼고 파악하는 감정과 생각의 속도감과 궤를 함께 한다.  


물론 이러한 패턴이 비단 배우라는 직업군의 고뇌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덫이 경계를 넓혀나간다. 마치 개인과 개인들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타의적인 집단 무의식의 북소리에 취해 춤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과 같은 요상한 기분을 맛보며 말이다.


이런 식의 몰이는 언제나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원할지도 모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어 무의식을 확 누르고 싶으면 수많은 개인들의 의식을 모으고 설득하여 제지해야 한다.


 



보통은 여기까지 생각하면 그만인데, 책 [해커 붓다]가 끼어들면서 머리 속 양상은 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영화 [더 콩그레스]의 이야기는 그저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전개될 뿐인 경고성 인간미래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 객체란 사실 없고 - 무한대로 팽창해나가는 집단적 지성 또는 꿈의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일까?


보통 윤회를 받아들이면 모든 인간, 동물, 식물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때때로 인간은 식물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 모두는 흘린 눈물과 피도, 축적된 행복의 양도 어마어마한 존재들이다.

만약 일정한 순환시스템에 따라 객체가 지닌 무게는 떨궈내는 게 순환 시스템이라하더라도 무의식에 축적되는 경험은 마치 무게가 아닌 깊이로 환산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보다 열망- 이 든다.

전생에 따라 후생이 결정된다는 시스템에 따르면 이건 매우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붓다처럼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거다. 그저 객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지루하니까. 그 길이 꽃길일지 가시밭길일지 모른다할지라도...


하지만 난 그동안 공부해보지도 않은 불교에 대해 다소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판단했다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도 온갖 물질로 나누고 또 나누면 구성요소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구성요소들이 다 모인다해도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사실 인간도 6개월이면 모든 세포가 다 바뀐다던데, 그렇다면 6개월전과 현재의 나는 어떻게 하나의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걸까?

그러니 많은 종교들이 영혼, 또는 정신 등으로 부르는 것들은 어느새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 책에 따르면 - 영혼이라는 건 없을 지도 모른다. 불교에서의 윤회는 육체가 사그러들고 남은 영혼이 옮겨가는 게 아니란다. 무언가 발생한다면 그건 단지 요소들과 조건이 충족되었을 뿐인, 모든 것은 과정이다. ‘나’라는 단독 요소가 계속 유지되어 흘러가는 게 아니다. 애초에 나는 과연 6개월 전과 지금의 나를 무슨 수로 하나의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환상일 뿐이 아닐까?


결국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생각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일종의 환상일 수도 있다.

영화 [더 콩그레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은 꽤 있을 법한 요소에 따라 추적 또는 역추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 이야기 전체가 그저 주인공의 꿈, 내지는 주인공도 아닌 그냥 그 무언가의 꿈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네’라는 장자의 말이나,

전 우주라는 꿈을 꾸고 있다는 비슈누처럼 말이다.






해커 붓다

저자
김병훈 지음
출판사
반디출판사 | 2014-05-14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밝히는 안내서 ■ 정보과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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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콩그레스 (2014)

The Congress 
 8.2
감독
아리 폴먼
출연
로빈 라이트하비 키이텔대니 휴스턴코디 스밋-맥피존 햄
정보
SF, 판타지, 애니메이션 | 이스라엘, 독일, 폴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벨기에 | 122 분 | 2014-06-05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 http://movie.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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