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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에 사진이 걸리는 '걸(girl)'들의 이미지가 그리 고상하거나 따뜻한 계열은 아니다.
대체로 해외의 육감을 넘어 육덕진 그녀들의 살들을 연상하기 마련이므로.
국내의 캘린더 시장은 화보시장으로 이미 많이 빼앗긴 것 같고 팬시나 신년 고객만족선물로 돌아선 느낌도 있고...
여튼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열심히 소비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캘린더걸스'의 그녀들은 분명 비슷한 컨셉이긴 하지만 소비의 의미가 다소 색다르긴 하다.
영국 요크셔의 라일스톤이라는 마을에 사는 그녀들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그 마을에서 각자의 일에 열심이고 여성회에도 꾸준히 참여한다.
어느 날은 퀼트를, 다른 날은 선인장 재배를..
고상하지만 지리지리한 교육과 마을간 축제에서 암암리에 드러나는 여성회간 기싸움 정도가 긴장과 모험의 전부인 그녀들에게 스스로 만들어낸 희한한 이벤트가 찾아온다.
백혈병으로 순식간에 남편을 잃은 애니는 슬프면서도 자연스러운 받아들임으로 이미 안정된 느낌이다. 그럴리 없겠지만 일단 겉모습은 그러하다.
다만 평소 들판에 소파 하나 놓고 애니와 함께 즐기길 꿈꾸던 남편의 마지막이 된 병원에 소파를 선물하고픈 애니가 남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성회의 따분함, 어머니 때부터 모태 신앙처럼 다니게 된 여성회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애니의 친구 크리스가 있다.
바야흐로 다가오는 연말을 맞이하여 여성회는 캘린더 제작 계획에 들어가고 목표액을 세우지만 따분한 풀떼기나 고성 사진으로는 어림없으리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어느날 크리스는 정비소 한켠의 실제 육덕진 그녀들이 나오는 캘린더를 보게되고, 자신들이 주인공인 누드캘린더를 -비공식적으로- 제안한다.
생각외로 동네 40~60대 여인들의 호응이 시작되고 병원에서 만난 사진가가 주부들의 일상 모습이라는 - 그러나 누드인- 컨셉을 제안하면서 그들의 캘린더 작업은 더욱 신빙성 있는 작업이 되어간다.
병원 후원을 목적으로 하고 기존 누드의 개념을 살짝 비틀게 될 이 작업은 여성회장의 안티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부터 슬금슬금 용인과 지지가 시작된다.
예상 가능한 범주의 파장은 어느새 출시와 동시에 '빵' 터지게 되면서 미국 유명 토크쇼에까지 초대받을 지경으로 커져버렸다.
작은 마을에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살지, 보다 큰 무대에서 이름 드높이며 살지는 개인의 선택이자 기회이자 노력이자 운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인생의 롤러코스터의 높낮이가 다를 뿐 크게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이 롤러코스터의 골짜기 크기는 선택과 삶의 전환, 주변인들의 변화, 관계의 신구 교체라는 다소 복잡하고 잘못 어긋나면 골이 깊어지는 많은 문제들을 수반하고 있다.
그녀들은 그들의 작은 아이디어와 용기로 자신들의 갖고 있던 롤러코스터의 굴곡을 맥스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제는 소파가 아니라 병원을 차릴 지경이다.
다만 끌어올려진 맥스 이상을 그녀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의 몫도 그녀들에게 떨어졌다.
극단적으로 이 이벤트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크리스는 '달력을 더 팔려면'과 '따분한 일상의 탈출'로 진화 또는 퇴화 중이다.
한편 어디쯤에서 선을 긋는 것이 '진정성'이라는 그녀들의 명분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지 본능적으로 아는 듯한 애니는
튕겨진 고무줄의 반향이 결국 수평으로 돌아오듯
그녀들을 다시금 소중한 보금자리의 주요인물로 균형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튕겨진 고무줄이 수평으로 돌아오기 싫다면 끊어지는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은 튕겨지는 고무줄 역시 사전에 양쪽에서 잡아당겨져 팽팽히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더불어 원할 때면 그리고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다시 튕겨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된다.
라일스톤의 실제 그녀들은 캘린더 2탄도 찍고, 여전히 수익금은 괜찮은 편이며, 전액 백혈병 환자를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다.
* 사진 출처 : 다음 무비(http://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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