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 장편, 극영화, 드라마, 한국, 105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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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직장인지 잘 모르겠으나 쫓겨난 것 같은 상훈.
화장품 방문 판매와 마사지사로 일하는 선주.
그들의 일상은 고단하기 이를 때 없다.
상훈은 그 와중에 친구에게 돈을 사기당하고, 돈 받아주는 심부름센터에 맡겨볼까 했다가 겁만 잔뜩 먹고 발을 뺀다.
겨우 찾은 사기친 친구는 돈 갚기는 커녕 경찰에 쫓기는 신세이고, 그를 통해 어쩌다 알게된 첫사랑의 소식은 병을 앓고 요양 중이라는 것.
그녀를 찾아가는 길에 술 취한 여인을 도와주다가 또 사기당하고, 가까스로 찾아간 첫사랑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의 생기를 모두 잃어버린 것 같다.
선주는 매일의 서비스업에 지치고, 사장의 매출 종용에 스트레스받으며 두통에 시달린다.
유일하게 같이 사는 식구인 남동생은 자신에게 뚱하기 이를 때 없다.
우연히 만난 길거리 악세사리 파는 처녀와 친해지면서 자신과는 다른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낀다.
바람의 노래엔 많은 인물과 많은 장소가 등장한다.
누가 주인공인지, 무슨 이야기가 중심인지 헷갈릴 것 같은 흐름 속에서도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인물과 이야기가 있다.
이 인물들은 극히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자, 일상적으로 답답해마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주인공 상훈은 착한 사람 컴플렉스라도 걸린 것 같은, 그런데도 희한하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이다.
유독 퇴사에 사기까지 안좋은 상황에서도, -제 코가 석자인 주제에- 보답없을 것 같은 그의 다소 소극적인 선행들은 관객의 답답함 게이지를 점차 상승시킨다.
친구의 사기에 분노해 심부름센터를 찾았을 때 센터 직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중년 남성을 챙겨서 밥을 먹이고,
결국 찾은 사기남을 거둬 먹이고 숨겨주고,
길 가다가 반말 날리며 이것저것 시키는 술 취한 여인을 건사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나 같으면 애저녁에 내뺐겠다', '어이구 저 답답이'라는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반면 선주를 통해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상대적으로 단선적이다.
그녀의 두통은 스트레스성임이 분명하고 그 스트레스는 그의 직업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동생이나 길거리녀같이 주변의 보다 자유로워보이는 인물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하고 가까이 다가가려하지만, 그들처럼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그녀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은 도대체 언제쯤 저놈의 직장을 박차고 나올 건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낼 건지의 여부다.
상훈은 차곡차곡 쌓인 답답함의 게이지를 결국 어느 바닷가 낙조 속에서 분노의 포효와 함께 터트려버린다.
쇼케이스 GV 때 듣기로는 원래 시나리오에선 그 장면조차 답답하게 넘어갔다고 하나 촬영 내내 그 답답함의 중심에 있었던 배우가 '이젠 터트릴 때'라고 감독을 설득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장면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치고 말았을 지도 모르겠다.ㅋ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결국은 상훈은 안정을 되찾은 듯 보이고, 더불어 새 직장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상같지 않았던 일상은 결국 일상으로써 마무리되고 인생의 난타성 고비들을 숨가쁘게 넘은 후 맛보고 있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한편 선주는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던 모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동생의 자리 마련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등장조차 하지 않고, 동생의 전화 통화 장면만 나온다. 결국 그녀는 '그들처럼 살아가기'로의 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당분간 그녀는 두통에 시달리고, 자유인에게 호감을 보이는 삶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어부지리인지 알 수 없으나 누나 대신 모델 사진을 찍게 된 동생의 삶과는 다르게 말이다.
바람의 노래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수많은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교차들이다.
선주의 남동생이 미술을 배우는 선생은 상훈이 사기당한 남자의 여동생이고,
상훈이 밥 먹인 심부름센터에서 얻어맞은 중년남은 선주의 눈길을 끈 길거리 악세사리녀의 아버지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것 같은 관계사는 넓은 듯 좋은 세상을 한번에 보여주는 듯, 생각보다는 촘촘한 관계의 고리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감독은 배우에게 '윤회'이야기를 잠깐 했다던데, 그야말로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할 지 모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의 의문보다는 '나도 저렇게 살 지도 모르겠다'는 수준으로 읽히는 캐릭터와 환경들.
그러다보니 인물마다의 공간과 관계에 '나'를 대입해보게되는 영화.
물론 영화 관람하는 동안은 인물, 이야기 쫓기 바빠 그럴 정신머리는 없을 거다.
* 스틸의 두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외향도 배역에 딱이지만, -미안하지만- 연기는 좀 꽝이시다. 나머지 배우들은 모두 굳 (O.O)b
* 사진출처 :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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