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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1960 하녀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10. 5. 16.


하녀
감독 김기영 (1960 / 한국)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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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의 하녀는 포스터만 보면 왠지 뻑적지근 준재벌네 부부와 하녀가 등장할 것 같은데,
1960의 하녀는 양상이 좀 다르다.


아내가 종일 발을 굴리며 재봉틀을 돌려 마련한 돈으로 구입한 2층 집.
남편은 공장의 여공 합창단의 강사로 일하는 돈 벌기 텃지만 고상하기 이를 때 없고 아내가 아플 때 라이스카레도 만들 줄 아는 자상한 사람이다.
유부남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 여공을 기숙사장에게 알려 처벌을 요구하는 이 고지식한 남자는 아내의 과로로 인해 들이게된 철없고 맹해보이는 하녀와 더불어 꼬이고 꼬이는 격동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정숙하고 정 많고 아름다운 아내와 살가운 생활을 일궈나가는 일상 속에서,
다리가 불편한 딸에게 삶의 고통을 희망으로 바꿀 방법에 대해 조언할 줄 아는 남자이지만 정작 자신은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리고 만다.
자신이 처벌을 요구했던 여공이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자 심한 고통을 겪는데, 하필 아내는 임신 중에 친정에 가버렸고 그 사이 하녀는 남자를 유혹하고만다.


지금봐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의 상승, 불륜, 자멸의 과정 자체가 진부 내지는 극단적이기 이를 때 없지만,
특히 인물들의 점진적인 권력관계 변동은 인물의 표정과 외향, 상황에 따라 매우 자연스러운 연출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큰 변주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건 각 캐릭터들의 목표의식이 매우 깔끔하다는 점이다.


가장 오락가락이 많고 진부하기 이를 때 없는 인물은 역시 남자다.
자상, 고식, 지혜로운 남자는 어느덧 단 한번의 외부 스트레스로 그동안의 심적 마크가 깨지고 단번에 나락에 빠지고 해결방식 또한 -자살을 통해- 극단적이기 이를 때 없다.


그러나 여자들의 캐릭터는 변화하는 권력 관계에 따라 다채롭기 이를 때 없다.
남편이 강도짓을 해도, 살인을 해도 모두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아내는 불륜 역시 결국 받아들이고, 행복한 가정의 유지를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임신한 하녀에게 아이를 떼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집안의 주도권이 하녀에게 넘어가자 그녀에게 무릎 꿇고 빌기까지 한다. 목표는 유일하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 되찾기.


죽은 여공의 친구인 여공 미스 조는 죽은 여공에게 연애편지를 쓰도록 독려하고, 개인레슨을 하겠다며 남자의 집에 정기적으로 들락날락한다. 이 집에 하녀를 소개해준 사람 역시 미스 조이다. 그녀의 목표 역시 유일하다. 남자에 대한 사랑, 그러나 비교적 거리가 있고 도를 넘을랑말랑한 사랑.
하지만 경계선에 선 사랑은 결국 짝사랑이고, 경계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어떠한 권력도 가질 수 없다. 미스 조는 그저 모든 핵심들의 연결고리 이상은 될 수 없다.


하녀의 목표는 처음엔 미스 조에 대한 경쟁심리였다. 피아노 배우는 게 부럽고, 남자를 사랑한다니 자기도 그 남자를 가지고 싶어진다.
물론 임신을 하고나서 그녀는 남자에 대한 소유욕만이 생존 목표가 된다. 처음엔 첩으로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표정마저 비굴하지만, 나중엔 남자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악한(?) 여인이 된다.



흑백화면이지만 지금봐도 멋들어져보이는 회벽과 샹들리에, 식기들은 - 바느질벌이로 구입이 가능한 지 알 수 없으나- 가족의 갑작스런 신분의 외적 상승을 보여주는 가운데,
마치 여자들은 남자라는 말을 통해 권력과 환경 변화에 적응 또는 벗어나려는 긴장감 넘치는 선수(player)들처럼 느껴진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하녀 캐릭터는 오랫동안 잊었던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영화에서 실제 가장 볼품 없어보이는 그녀(죄송^^;)는 옷이든 얼굴이든 머리모양이든 정말로 맹해보이는 하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옷이 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서 정말로 섹시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예뻤으나 머리모양과 핑핑 도는 안경 하나로 못생겼다고 우기는 대한민국의 극들.
처음부터 지혜롭기 짝이 없는데 나중에 그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는 대한민국의 극들.
언제나 중국 무협을 보면서 부러웠던 점 중 하나가 실제로 우매하고 촐싹대던 인물이 지혜롭고 존경받는 인물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1960 [하녀]의 하녀는 오랜만에 보는 정체되지 않은 인물상이다.


마무리의 계몽적 대사로 코미디까지 가미한 영화 [하녀].


지금 봐도 시대의 차이로 인한 컬트적 매력과 살아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작품인 듯.


* 2007년 월드시네마재단에서 디지털화 작업 통해 재탄생했다고 하네요.
* 보시려면 : 한국영상자료원 열람실에 가보시길~! http://library.koreafilm.or.kr/
* 사진출처 : 네이버 무비(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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