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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인권활동가, 스파게티 가게운영자, 직장인.
평범한 직업의 남성 4인은 역시 평범하지만 남들과는 좀 다른 고민과 어려움의 삶을 꾸려간다.
이 영화는 4명의 게이가 오늘을 사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감독 준문은 옛 애인과 재회한 두 게이노인을 담은 단편영화 [올드랭사인]을 통해 게이영화를 만드는 게이감독으로써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은 듯 하다.
그러나 새 영화 [로드 투 이태원]을 연출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위축되고 소심해졌다.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텝은 이성애자이고, 그들은 영화의 자기화보다는 게이감독의 연출력을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으로만 다가온다.
감독답게 현장을 장악하고 모든 상황을 콘트롤하고 싶지만 감독의 이마에는 땀만 삐질삐질 날 뿐,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장은 함께 있어도 감독 혼자만 느끼게 되는 고독을 줄여나갈 수 없다. 이미 그의 영화에서는 그가 해봤던 체위마저 스텝들의 '말도 안된다'는 질타 속에 담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가 사는 영화 현장은 그의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자신의 영화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헤쳐나가기 힘들어진 듯 하다.
그의 게이 현장 적응기는 이미 첫 영화에서 끝난 줄 알았으나, 이번 [로드 투 이태원]을 통해 매번 반복, 증폭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그러나 그에게 일상은 영화이고, 그것을 구현해나가는 현장이고, 이를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그는 다음 영화를 준비하면서 더욱 쾌활해졌고, 스텝들과의 호흡도 남달라졌으며, 자신감도 붙어있다.
왠지 세상의 편견 또는 터부에 제대로 맞닥뜨린 순간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한 듯 한 모습이다.
인권활동가 병권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일했지만, 단체 사정이 않좋아 다른 NGO에서 업을 삼은 동시에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도 병행 중이다. 저녁부터 시작되는, -부업이 되었지만- 왠지 마음 속 첫번째 직장인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그의 전세집 한켠이기도 하다.
자신의 살림까지 나눠가며 하는 활동은 이미 그의 삶이고, 그 자체다.
그가 출연자 중 어느 누구보다 안정감 있어보이는 것은 직장이든 친구든 '커밍아웃'해도 비교적 속편히 지낼 수 있는 삶의 공간들에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 상경해 작은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는 영수는 단체 친구사이의 재간둥이처럼 보인다.
해맑은 그의 모습은 '게이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는 그의 말과 무관하지 않다.
가족, 친구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할 수 없었고, 상경해서 이태원과 종로를 기웃하며 게이를 만나던 그에게 친구사이의 한 형이 말을 걸어준 건 그를 은인으로 여길만큼 소중한 기회였다.
그는 이제 섹스파트너가 아닌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같이 합창단 모임 활동도 할 수 있다.
오랜만에 합창단 지방공연에서 만나게 된 첫사랑도 이젠 숨기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친구사이'로 대할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주변까지 환하게 비춰줄 것 같은 영수씨의 모습은 단연 돋보였고, 가장 평범해보이기도 하다.
마치 새롭게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아이들의 설레임과 흥분, 어느새 나이 들면 까먹는 인간관계의 즐거움이 그를 통해 묻어나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뇌수막염(?)으로 단 몇개월만에 세상을 등지게 된 그의 영정사진이 화면에 비출 때의 놀라움은 안타까움이고 아쉬움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 보고 친구가 되었으면 했던 그가 극영화도 아닌 다큐에서 사라져간 모습은 단연코 이 다큐의 오묘한 클라이막스이자 서글픈 절정이다.
직장인 욜(정확한지 모르겠당...^^;;)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자 AIDS 운동가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로 보면 소규모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AIDS 감염자는 대체로 자신들끼리의 연애만 즐김 또는 -암묵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욜은 비감염자로써 AIDS 감염자와 애인으로써 동거 중이다.
왜?
'내 타입인데 어떡해'.
정답!
사실 AIDS는 -더럽게 비싸 문제지만- 약만 잘 복용해도 일상 생활에 별 문제 없고, 섹스할 때만 좀 주의하면 애인관계도 문제 없다. 오히려 욜의 애인이야말로 더 큰 고민이다. 혹시 애인이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자신 때문이라는 비난을 과연 버텨낼 수 있을 런지...
그러나 그들은 오늘도 행복한 동거생활을 꾸리고 있고,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소소한 집안일 다툼으로 하루를 꾸려간다. 이 모습이야말로 가족 지상주의자들이 말했던 마땅한 인간의 도리로써의 삶이 아니었는가?
이들이 지금의 현재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터부를 견디어오면서 도착한 하나의 정거장이 바로 종로다.
종로는 그들에게 원나잇스탠드 뿐 아니라 애인과 친구, 가족을 만드는 삶의 터전이다.
동시에 그들은 종로의 기적이기도 하다.
종로라는 도시의 한 구석이 그들에게 허용해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일구고 가꾸고 지금도 리뉴얼해나가고 있는 그곳, 그들이 말하는 종로의 기적은 바로 자신들일지도 모르겠다.
* 사진출처 : 다음 영화(http://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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