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번뇌 보이 (erotic chaos-boy)
  • 2005 | 장편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멜로, 명불허전, 대한민국, 75분
  • 감독, 출연 최진성
  •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랑이 있다. ‘빡센 사랑’과 ‘좆나 빡센 사랑’. 시작은 원래 그닥 빡세지 않았다. 본의..




erotic.
1. 성애의, 애욕을 다룬
2. (영화 등이) 성욕을 자극하는
3. 색정의, 호색의

love
1. 사랑, 애정, 호의
2. (보통 one’s ~) (안부를 전하는) 인사말
3. a 연애, 사랑 (of, for, to, toward(s))
b 성욕; 색정; 성교
c (가산) 정사, 정욕
4. a (또는 a ~) (사물에 대한) 애호, 좋아함, 취미
b (가산) 좋아하는 것[일]
5. (가산) 사랑하는 사람(darling)
6. (L~) 연애의 신, 큐피드(Cupid)
7. (신의) 사랑, 자비; (신에 대한) 경애, 공경
8. (가산) (구어) 유쾌한 사람, 예쁜[귀여운] 물건[사람];[pl.] 어린애들
9. [테니스] 영점, 무득점


* 출처 : 다음 사전(http://dic.daum.net)


이 영화는 잘 팔리고 섹시하게 어필하고 싶다면 '에로틱'에 강조의 강조를 더해야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에로틱'에 '번뇌'하는 30살 '보이'가 등장하는 '15세이상 관람가'의 컨텐츠다.


감독은 얼마 전 헤어진 것 같은 일본인 애인과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곧 있으면 타인과 결혼할 전 애인까지 만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때론 극단적으로 어려웠던, 때론 일상적으로 어려웠던 경험과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 애인이 사준 귀걸이의 존재를 까먹은 자신의 기억과 사후 20년이 지난 할아버지의 나이를 읊는 할머니의 기억을 통해 사랑에 엮이게 되는 얄팍하고도 진중한 인간의 기억 놀이에 대해 짚어본다.


때론 친구들에게, 때론 부모에게 사랑에 대해 질문해보지만 시원한 한마디는 어지러운 여러 마디 후에도 정리될까 말까다.
심지어 용한 무당에게까지 들이대어진 '사랑의 정의에 대한 질문'은 엄청난 침묵을 이끌어낼 만큼 생뚱맞다.
그러나 처음 본 용한 무당조차 갖게 되는 질문에 대한 마음가짐은 형언할 수 없는 진지함이기도 하다.



매우 놀라운 점은 왠지 이 영화가 등장인물들의 진지함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고 느긋하고 개구지다는 점이다.
왠지 사랑은, 진지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일상적인 나머지 웃길 지도 모른다고 일러주는 듯 하다.
내지는 모두가 내뱉은 말을 감독의 "꼴리는 대로' 보여주면서 마치 감독 자신을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물론 감독은 영화 처음부터 소설 속의 인물의 행동으로 간주하라든가, 사랑했던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등의 방어선을 치지만, 동시에 '좆나 빡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사랑 묻기' 놀이에 지친 감독은 -실제로도 그랬을 것 같은데- 당분간 '사랑'은 꺼내지 않을 태세이지만,
그 와중에도 관객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여러분은 '빡센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좆나 빡센 사랑'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영화제목에 의문을 표시하며 온라인사전을 찾아보고는 좀 놀랐다.


사랑이란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1.)', 때론 '성욕(3.b.)'이나 '정욕(3.c.)', 때론 그저 '좋아함(4.)'일 때도 있다.
더불어 '유쾌한 사람(8.)'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어떠한 감정이라거나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진심어린 '인사말(2.)'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합당한 마무리로써 가장 마음에 와닿는 건 폭발할 것 같은 감정도, 심연에 빠질 것 같은 감정도, 은근히 젖어드는 감정도, 때론 무심한 감정도 다 합치면 플러스 마이너스 '영점(9.)'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가장 신비하고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엉뚱한 것
'사랑은 택시와 같은거죠. 함께 걸어온 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 영화<에로틱번뇌보이>에 등장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김제동 어록 12번



* 사진출처 :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1. 지성의 전당 2018.11.28 20:41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번뇌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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