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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태풍에 대한 복기, 되새김, 고증 - 애니메이션 [Wanted]

by jineeya 2010. 9. 25.


애니메이션 <Wanted>에는 짓궂은 이, 다정한 이, 괴롭히는 이, 남을 돕는 이 등 다양한 이들이 어우러져 사는 평범한 마을에 문득문득 스쳐 지나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흡사 악귀와 같은 모습의 할머니 ‘셀마’를 볼 때면 어김없이 기분이 안 좋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던 어느 날 마을은 엄청난 물폭풍 속에 잠겨버렸다. 주민들은 구명보트에 몸을 의지하게 되고 구원의 함선이 도착하자 감격하면서 구조 요청을 하지만, 그들의 조치는 함선으로의 수재민 구조도, 식량 전달도 아닌 황당한 기념품 전달 뿐이다.
겨우 폭우가 멈춘 마을에 다시 복귀한 마을 주민들 앞에서 함선에 있던 그 정부 관료는 실천적 모습을 약속하며 삽질을 해보지만 이제 누구도 그에게 귀 기울일 일은 요원할 것이다.


1987년 첫 번째 수퍼 태풍으로 기록된 태풍번호 8705 셀마(국제명 THELMA)는 직경 1850km의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며, 최대 풍속 65m/s의 속도로 전라도 고흥반도에 상륙하였고 한반도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당시 셀마의 한반도 상륙 전날인 7월 14일, 기상청은 태풍의 진로를 일본 큐슈로 발표하였으나 무섭게 북상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당일인 15일에도 여전히 기상청은 예상 진로가 변경된 것일 뿐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집계된 사망,실종자는 345명이며 이 중에는 기상청을 철썩같이 믿고 조업에 나섰다가 피항하지 못한 선박들의 덧없는 침몰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 속이 뒤집힐 일은 기상청이 태풍이후 한반도 관통 사실을 은폐하고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는 어처구니 없는 조작 발표를 했다는 점이다. 당시 한반도에 태풍이 관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1988년 1월이 되어서야 기상청은 잘못을 시인했다.


이번 추석에 들이닥친 폭우는 어렵사리 고향을 찾는 교통 체증이나 여인네들의 명절증후군의 근심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피해주민들은 ‘한가위 음식 한판 거하게’가 아닌 물벼락 한판 제대로 맞았고, 옷 몇 벌 겨우 챙겨나온 후 날아간 세간살이에 눈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나 철모르는 어른신들이 자꾸 ‘뜻밖의 천재지변’이라 떠들 때 때마침 듣게 된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는 ‘천재라 떠들지 말라’는 한 수재민의 울분에 찬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이번 피해는 여야 할 것 없이 도심의 배수시설을 문제 시하기는 했다. 오래된 하수관, 비상시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저수펌프는 이번 피해의 뼈저린 교훈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어느새 4대강과 자연스레 엮어 피해를 설명한다. 야당은 정부가 ‘4대강 사업에만 신경 쓴 나머지 다른 부분을 신경 못쓴’ 탓을 하고, 여당은 ‘강물이 넘친 홍수 피해는 없었다며 4대강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007년작 애니메이션 <Wanted>는 1987년 태풍 셀마에 대한 패러디가 아닌 이해도를 높이는 변용이자 복기이자 되새김이자 고증이다. 심지어 이러한 되새김은 2010년 현재에 이르러서까지도 현실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변함없이 정부와 정치권은 현상에 대한 은폐와 자신만을 위한 포장에 이용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지만, 매번 당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혼동스러울 지경이다.
5천만이 다 아는 유행어 제조기의 신조어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좀 하자. 못하겠으면 다들 꺼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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