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람 (Water)
장편, 해외영화, 드라마, 멜로, 여성, 캐나다, 117분, 2005년

 
종교적인 은거의 터전, 아쉬람.
최근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보니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나오는 크샤트리아 계급 역시 전장에서 죽거나 숲으로의 은거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단다.


영화
[아쉬람] 역시 조용한 은둔자의 생활터전이 나온다.
그러나 곳의 그녀들은 조용히 존재하고자 한다기보다 사회적으로 조용해야할 것을 종용받는 이들이다.
그녀들은 남편이 죽은 미망인들이다.


힌두교에서는
남편이 죽은 여자들은 가족의 허락 하에 그의 동생과 결혼하거나 평생 속죄하며 아쉬람에서 지내야 한다.
1930
년대 아쉬람에는 너무나 어린 쭈이야가 머리카락을 밀고 들어오게 된다. 그녀는 남편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 어쩌면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의 곁을 떠나 곳에 오게 되었다.
갑자기 부모 곁을 떠난 것도, 하얀 여인들에 둘러쌓인 것도 충격인 그녀는 이제나 저제나 부모를 기다리지만 그들은 오지 않는다.
그나마 어느 만난 아름다운 깔랴니와 그녀의 비밀 친구 강아지는 위안과 대화상대가 되었다. 깔랴니는 결혼할 신부에게는 옷깃조차 스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더럽고 저주받은 존재로 취급받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선량하다.


그리고
어느 찾아온 사랑에 수줍어하지만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결심이 순간, 깔랴니는 용감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발휘한 용기의 끝에서 그녀의 내외면적 아름다움에 부합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져버린다.

 

 


오로지
비좁고 음침한 거처와 기도, 사원에서의 구걸 만이 허용된 그들에게도 비밀은 있다.


그녀들은
누구보다도 더러운 취급을 받기에 누구보다도 순결을 갈구하는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근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정화하려는 노력은 초기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온 자들에게는 감동적인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숙한 아내였다가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남은 생을 자숙과 반성(무엇에 대한 반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으로 보내는 그녀들과 죽고나면 찬양해주는 주변인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현재 그곳에 존재하는 그녀들에게는 그저 감옥이고 압박이고 비자발적인 시스템일 뿐이다. 그녀들의 기도는 힘을 잃었으며, 처연함조차 느낄 없을 정도로 처량하고 구질구질하다.

 

 

와중에 아쉬람을 유지하기 위해 생계전선을 책임져야 하는 얼굴 어여쁜이들은 원치도 않는 브라만의 품에 안겨 돈을 받아내는 이율배반적 매춘 행위를 묵묵히 수행해야 한다.


시스템은
이미 시스템 내의 반논리에 밀리고, 그녀들의 머리 부정에 밀리고 있지만, 안타까운 그녀들이 돌파할 방법 역시 만무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음에도- 깔랴니와 사랑에 빠져 청혼한 시대 진보적인 남자의 사례는 일반적으로 그녀들에게 100만분의 1 만큼이나 현실적이지 못한 그것이다. 오히려 아쉬람 전체의 생계를 위해 브라만에게 안겨야 하는 깔랴니의 경우가 쭈이야에게까지 계승되는 나쁜 농담 같은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미
시대는 광복과 평등사상을 역설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존재하고, 법적으로도 여성의 재혼이 허용된 시대였으나, 아쉬람의 누구도 사실에 대해 알거나 교육받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작금에도 사라지지 않고 찌꺼기처럼 남아버린 잔상이기도 하다.


실제
영화감독인 디파 메타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의 인도 사회와 여성에 대한 주장에 일침을 가하는 영화를 연출해왔다. 이미 전작인 [파이어] 개봉할 당시에도 극장에 반감을 가진 힌두교 폭도들의 습격이 있었고, [아쉬람] 촬영 당시에는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의 협박으로 촬영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당시 디파 메타 감독을 지지하던 조지 루카스 감독은 그녀의 영화 제작을 지지하는 광고를 버라이어티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로써 전세계 여성단체와 인권단체의 지지를 얻어내긴 했으나 영화는 결국 5년의 세월이 지나 인도가 아닌 스리랑카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쭈이야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간디 일행과 함께 떠날 있는 기회를 얻지만, 나머지는 모두 하얀 옷의 그녀들의 어두운 인상과 마음과 생활 만큼이나 칙칙하고 이미 소멸당한 자의 삶이 계속된다.

모르면 비굴해도 순응하게 되고, 모르면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존재의 가치를 발휘하고, 관람의 의무를 부여한다.

 

* 사진 출처 :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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