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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세상의 마리아들은 어찌나 비슷한지 - 독립영화 [레드마리아]

by jineeya 201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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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드마리아]
  • 세상의 마리아들은 어찌나 비슷한지 - 독립영화 [레드마리아]
  • 2010-04-11 | jine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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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일본, 한국... 필리핀, 일본, 한국, 필리핀, 일본, 한국...


    레드마리아는 1) 여성, 2) 자본주의의 역군(?)일 노동, 그리고 알고보면 3) 자본이라는 기준에 따라 등급 나뉜 나라 또는 지역이라는 세 축으로 씨실, 날실마냥 미묘하게 다르게 묶인 수많은 주인공들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삶의 외관은 종사하는 노동이나 위치한 공간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판자집을 위로까지 쌓은, 게다가 기차가 바로 옆에 지나다니는 필리핀의 환경은 위험천만하기 이를 때 없다.
    반면 정돈된 도시 한복판을 바삐 움직이는 일본의 여성들이 생존하는 공간은 청결과 안전으로 무장되어있는 듯하다.
    직업 또한 공간(나라)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기차길 옆 철거촌 주민대표를 맡고 있으나 별 직업 없어보이는 필리핀 여성,
    직업은 가졌으되 해고 이후 1400일 가까이 투쟁하고 해외 심포지엄에 나가면 '세상에 이런 일이'급의 투쟁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여성,
    비록 파견법에 나동그라졌으나 남편이 있거나 하루 3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요양보호사지만 차 정도는 몰고 다닐만해보이는 일본여성.

    하루의 시작은 수많은 여성들의 공간적 차이를 드러내는 듯 하다.


    그러나 하루의 중간을 넘어서면서 '그녀들에겐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강해진다.

    집이 무너지는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챙기고 식사를 마련한다.
    1400여일의 해고투쟁 속에서도 결혼과 출산은 계속된다.
    가족에 대해 일절 나오지 않는 요양보호사의 하루는 수많은 장애인, 노인, 어린이/청소년의 보살핌으로 점철된 삶이다.


    더욱 희한한 건 그녀의 그 어떤 노동도 '여성이라는 노동자'라는 입장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고강한 기술자임을 부추긴 기업은 그녀의 기술이 더이상 쓸모없어진 그 순간, 파견직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녀의 커리어, 자존심과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그녀가 청춘과 능력과 애정을 바친 그곳은 남자 상사들의 성역과도 같다.
    그녀는 외친다. "여성이 하면 전쟁도 없어질꺼야!"

    한국, 1400여일의 기륭전자 노동조합원들과 성매매 노동자들의 투쟁엔 이미 사회 저층 노동자들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음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소소히 부딪치는 행동대장들 역시 여성일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필리핀 철거촌 주민대표가 대표로써 진행하는 일, 그녀의 가사노동은 '노동'이라는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그들의 차이는 그들의 공통점이 되어버렸다.
    해결책이 각자 달라진다하더라도 말이다.


    영화 초기 수많은 주인공들이 교차되는 편집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편집은 뒤로 갈수록 명백한 맥락과 완결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3국 여성들의 삶에 대한 보고서와 같으면서도 경쾌한 편집과 이야기들은 그닥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이럴수가'가 다소 섞여도 어디 가든 처한 사회적 위치는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나는 영화 속 두 인물군에 특별히 관심이 간다.
    한 군은 필리핀에서 일본군에 강간당한 할머니군들,
    또 한 군은 일본 한 공원에 거주 중인 노숙자이자 아티스트 이치무라상과 그들의 노숙 친구들이다.



    필리핀 할머니들은 그야말로 오랜 기간 묻어두었던 자식들조차 몰랐던 강간의 역사를 끄집어내 세상이 변화하길 바라는 용기있는 자들이다.
    처음 발표 시에는 기절한 할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용기만이 뭔가의 변화를 논할 수 있는 기본 중 기본이 된다.


    일본 이치무라상들은 마치 미래 세계를 설계하는 집단과도 같다.
    그들은 투쟁이나 반목의 역사를 뒤로하고, 자본주의라는 100여년 밖에 안되었으나 강력하기 이를 때 없는 이데올로기의 작은 구멍과도 같다.
    게다가 '인간은 행복한가?', '인간은 일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매우 의심스러운 그 논리에 정면으로 질문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결코 투쟁적이지 않다. 그들에게 우리야말로 이상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히려 정면이라기보다 우리를 통해 질문을 투영하고 있는 듯 하다.


    알고 보면 모두 비슷한 문제와 불행을 안고 있지만,
    수많은 다양한 과정과 해결과 기로가 나올 수 있는 사람이야기, 여자이야기.


    * 사진출처 : 인디플러그(http://www.indieplug.net)

     : 그리고, 여성영화제에서 GV 때 직접 찍은 이치무라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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