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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난 주 연휴, 대화 소외 방지용 영화 감상 마지막판이었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리뷰를 쓸 생각이면 일주일이나 지난 마당에 역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지금 시점이 당연히 안좋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시시때때로 '아, 이 사람이 주인공이었구나'라고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어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영화 자체의 스토리만 생각하면 그다지 신선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심심한 악마와의 내기에서 승리한 줄 알고 얻게 된 영생, 조건으로 걸려있는 16살이 될 딸.
딸을 뺏기지 않기 위해 타인을 홀려야 하는 또 내기, 내기의 성사를 위해 월등한 기량을 보여주는 청년.
어느 동화 속에선가 본 듯한 스토리, 인물, 환상들.
그런데 곱씹을 수록 주인공 찾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영화를 보기 전엔 당연히 히스레저인 줄 알았다. 역할명인 토니도 아닌 바로 히스레저.
그러나 확실히 안타까운 죽음으로 기억되는 히스 레저에 대한 고려는 감독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서 했나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대폭 수정되었다는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파르나서스 박사였다.
오히려 그 캐릭터의 존재는 사람들의 관례적 생각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바람에 영화의 입체감을 떨어뜨리고 있지 않나 싶다. 대부분 고인을 위해 나선 3명의 배우 사이에서 1캐릭터 4배우라 몰입이 어려웠다고 하던데, 난 오히려 입체감을 떨어뜨려주고 사람들의 습관적 사고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이라 판단해서 그런지 4인 4색 매력도 나쁘지 않았다.
뭔가 한발 앞을 선도하는 듯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매력적인 인간관계로 빛나는 토니.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캐릭터들이 사회가 짜놓은 자본과 권력 구조마저 뛰어넘지 못하고 철저히 영압하다가 파멸해가는 모습을 보면 천재와 바보 차이의 되새김같다. 인간의 능력은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이콜이라는 건가? 평범해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지만, 뛰어나도 망신창이가 될 수 있다.
영화를 본 즉시에 가장 돋보였던 건 발렌티나였다.
릴리 콜은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역시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사과 든 누드는 비너스를 연상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아름다운 연애와 가정을 꿈꾸는 평범한 여인일 뿐이다. 그녀에게 신비감을 주는 요소는 오히려 파르나서스 박사의 기괴한 행동에 맞춰 유랑극단을 하고 있다는 점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그저 엄청난 동안을 타고난 게 아까울 정도로 나른하고 일상적인 여인일 뿐이다.
반면 파르나서스 박사는 보면 볼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캐릭터이다.
그는 과거의 언젠가 악마가 가지고 놀고 싶을 만큼 훌륭한 고승이었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씀'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관객인 나는 그가 가진 본성을 계속 착각하면서 봤다.
그는 사실 조금 더 살면 진리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믿었고, 영생을 축복으로 봤으며, 예쁜 여자에 혹하고, 딸을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는 주제에 정작 당사자인 딸과는 별 대화 없이 딸의 행복을 제단하는 무식한 아버지이다.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그는 악마의 눈빛과 주사위에 혹하지만 다행히 오랜 친구인 키 작은 이의 제어가 당분간은 작동할 것 같다.
그는 삼라만상을 알 것 같지만 별로 아는 것 없고,
딸의 평범한 삶에 안도하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내기의 삶을 끝낼 생각이 없으며,
주체적으로 악마와의 관계를 끊을 줄도 모르는 참 무능한 인간이다.
그러나 '쯧쯧'하며 뒷짐 지고 혀를 차기엔 꽤 불편하다.
결국 파르나서스 박사의 모습 자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이며, 그것도 약간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또한 박사는 타인의 상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능력자라고 밝혔지만,
그가 보여준 아름다운 풍경 너머 공장과 오염이 넘쳐나는 세계를 보았을 때는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결과물들이 투영되는 것 같아 어디론가 뿅 사라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부끄럽기 그지 없고 불편하기 그지 없지만 행복하라고 주문을 넣을 수 밖에 없는 존재, 바로 나, 우리들이다.
* 사진출처 - 다음 무비(http://movie.daum.net)
* 뱀발 - 그래도 역시 히스레저를 볼 수 있다는 건 참 감동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더 이상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는 점도 참 먹먹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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