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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遡及] 정말 코믹스럽고 권태로운 영화 - [권태]

by jineeya 2009. 12. 16.

* 예전에 봤던 영화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 다시 읽어보니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이 드네요..^^

권태
감독 세드릭 칸 (1998 / 프랑스, 포르투갈)
출연 샤를르 베를링, 소피 길멩, 아리엘 돔바슬, 로버트 크레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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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직 후의 솔직한 나의 심정은 바로 권태로움이었다.
영화의 주제로써의 '권태'가 아닌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낌으로써의 '권태'.
17세의 풋풋한 아름다움을 가진 누드모델과 40대의 이혼한 철학 교수라니..
배우들이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를 알려주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40대 교수 마르땅은 '책을 쓴다'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활동을 통해 일상의 권태를 날리고 변화를 꿈꿔보려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소녀, 세실리아.
그녀는 만날 때마다 섹스만 하고, 대화를 해봐도 별관심사가 없다. 심지어 자신이 뭘 하고 지내는 지조차 무관심한지라,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설명해내지 못한다.

처음엔 몇 번 자고 헤어질 생각이었지만 결국 끊어내지 못하게 된 건 마르땅이었다. 그녀의 뒤를 밟고, 지켜보고, 추궁하고, 결국 원하는 답을 듣고야 만다.
세실리아는 다른 애인도 사귀고 있었고, 얼떨결에 들키긴 했지만 마르땅과 헤어질 생각도 없다. 이런 관계가 못마땅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마르땅.

영화가 끝날 무렵, 그는 심기일전을 다짐하지만, 그게 그녀를 단념하겠다는 소리인지 죽을때까지 그녀를 붙들 것이라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왠지 프랑스영화를 보면서 언젠가는 보았을 법한 설정과 내용 전개.
그래서 나는 매우 권태롭게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좀 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땅은 교수인 주제에 가르침에 대한 기쁨은 이미 잊었고, 부인과도 얼마 전 이혼을 했고, 일단 책을 써보려고 시도는 해본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보건대 그는 40 평생을 살면서 단 1분 1초도 권태로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련해놓은 삶의 공간인 가정과 학교가 모두 무료해진 그 시점에 인생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의 그에게 책쓰기라는 방식은 맞지 않았고, 우연히 만난 세실리아가 바로 변화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 변화를 자신이 알고 있는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즉, 세실리아에게 청혼함으로써 그녀를 소유하고 독점한다는 마무리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만만치 않다.
그녀에게 일상은 원래 권태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뭣할 만큼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오늘 누구와 만나, 어디서 식사를 하고, 무슨 구경을 했는지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옆에서 마르땅이 추궁할 때만 겨우 기억이 날 정도다.
그녀에게 일상의 권태로움은 그다지 처참하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며,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솔직히 마르땅은 세실리아가 필요했다기보다 변화가 필요했고, 때마침 세실리아가 끼어들었을 뿐이다. 그에게 책쓰기와 세실리아의 의미는 한점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황으로 보건대 책쓰기와 세실리아가 다른 점이 있다면, 세실리아는 마르땅이 알고 있는 연애나 사랑의 방식에 맞춰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번 마르땅의 변화 욕망은 시작점을 가지긴 했으나 종착점을 얻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마르땅 입장에서도 그다지 나쁜 상황만은 아니지 않나 싶다.
어떻든 마르땅은 변화를 욕망하지만, 완료되면 다른 변화를 찾아야 한다. 변화의 필요성이 완료되는 시점, 종착점, 권태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사진출처 : 네이버 무비(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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