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6.19.
향긋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기 한참일 무렵 결국 난 눈을 떴다. 평화로움에 땅에라도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닿는 나뭇잎이 뺨을 간지럽혔지만 뿌리치고 마음을 돌렸다.
페린데우스를 뒤로 하고 숲을 벗어났다.
“타오티에님”
분명 나의 이름이다. 그것도 지중해 근처에서 듣는 순의 언어.
“타오티에!”
고개를 돌리는 건 순간이었으나, 그의 얼굴은 느린 슬라이드 화면처럼 서서히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명!’
순의 장수 명이다. 나의 멱살을 부여잡고 군선에 밀쳐 던졌던 바로 그 녀석!
“잘 지내셨습니까?”
깊숙이 굽힌 자세가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
바로 치켜든 얼굴에 번지는 반가움의 미소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여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려는 거냐?
금세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먹는 것 이외에는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인가? 명색이 용의 자식인데 나의 분노는 가슴속 어디로 사그라든 것일까?
“'오랜 시간 찾아 헤맸습니다'라고 알리고 싶으나 이 나라에 들어오자마자 임금께서 일러주신 장소로 와보니 바로 계시네요. 다행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을 나라라 칭해도 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원의 색이 눈을 맑게 해주네요. 아름다운 곳입니다.
염제라면 모두 농지로 바꿔버리셨겠지만요.”
이 녀석이 명? 왜 이리 말이 많지? 임금 옆에 굳건히 서서 입 한번 떼지 않던 녀석이었을 텐데.
그새 하얀 얼굴이 살짝 그을렀나? 여전히 하얗긴 하지만.
사복인 것도 처음 보는 군. 역시 생각만큼 형편없이 말랐군. 저런 부실한 놈을 장수랍시고 측근에 둔 순제 놈이 불쌍하지.
“타오님.”
명이 입을 떼려 한다.
‘잠깐’ 순식간에 왼손이 명을 향해 펼쳐졌다.
페린데우스가 온몸에 중독시킨 게으름을 흩트러뜨리며 겨우 말문을 열었다.
‘이 자식, 여기서 뭐하는 거지?’
“모시러 왔습니다. 타오님.”
‘모시다니 난 쫓겨났다고!’
“네. 정확히 371일 전 도성 안뜰에서 군사들에게 포위되셨죠. 실제로는 비희님과 산예님에게 붙잡히신 셈이긴 하지만요.”
그렇다.
산예가 재미있는 물건을 구했다며 향로 안을 쳐다보라길래 ‘별일이다’ 싶었는데, 들여다보는 순간 뜨거운 불덩이들이 얼굴을 덮쳐왔다. 바로 물러서 계단에서 구르자마자 비희가 날 눌러버렸다.
‘이제 와서.’
“어머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뭐라고?’
어머니가 쓰러지다니... 그녀는 용이라고! 누가 감히 용을 쓰러뜨려?
* 참고 도철(饕 탐할 도, 餮 탐할 철) 용의 다섯 번째 자식. 먹고 마시는 걸 즐겨 잠시 눈을 떼면 솥뚜껑이나 술잔에 코를 박아버리는 경우가 즐비하다. '자신의 몸통까지 먹어치워 얼굴과 뿔만 남아있다', '순제에게 쫓겨났다', '더 많이 먹으려고 농작으로 유명한 염제 신농의 나라로 떠났다'는 등 소문이 무성하다. 최근엔 그를 직접 본 이가 없다 보니 들려오는 이야기도 괴기소설마냥 해괴망측해지고 있다. 비희(贔 힘쓸 비, 屭 힘쓸 희) 용의 첫째 자식. 힘이 장사이기도 하지만 힘 자랑도 즐긴다. 세상을 구성하는 초석인 돌만 보면 번쩍 들어 중력을 거슬러버리니 돌들이 화가 날만도 하다. 키도 잘 안 자라고 납작한 자라 용모이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데, 용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돌을 번쩍 들고 있는 건지 돌에게 깔린 건지 간혹 헷갈리기도 한다. 산예(狻 사자 산, 猊 사자 예) 용의 여덟 번째 자식. 어릴 적부터 어미가 내뿜는 불을 동경했으나 실제로 본 건 단 한번 뿐이다. 하지만 한번의 경험은 대단한 감동이었나 보다. 현재까지도 불이나 폭죽에 홀려 향로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문처럼 말을 걸어도 대답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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