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ny story

공감의 허구, 유리 감정 그리고 착각하는 이성

by jineeya 2014. 7. 29.

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우는 위치에 가게 되면, 말도 안되는 근자감을 갖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수업, 내용이라도 대충은 이미 나도 알고 있는 거 아닐까라는...


요즘 문화예술교육사 수업을 듣고 있다.

경력 빵빵한 예술강사나 현장 경험자, 학계 관계자라면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일지 모르겠지만,

특히 통합예술교육 수업을 통해 과거 학제와 변경된 내용,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추구 방향에 대해 알게되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 정말 모두에게 적용될 문화 예술의 가치가 막연함에서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동시에 뻔해보여도 교수님의 화려한 교수법에 넘어가 매우 순수하게 수행하게 되는 과제도 있는데,

특히 수업 내 행동으로 직접 구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놀라움을 선사한다.


며칠전 타인과의 접촉을 통한 라포 형성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워밍업으로 2인 1조로 눈을 완전히 감은 자와 안내자가 되어보는 체험을 진행했다. 


먼저 안내자를 하게 되었는데, 서있거나 평면일 때부터 파트너가 나의 손을 쥐는 강도가 세지는 걸 보고 팔짱을 걸어 좀더 몸을 밀착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내를 위해서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몇걸음 걸으면서 뭔가 특별한 이슈가 생기지 않는 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복도라는 평지를 걸을 때는 조용하다가 방향을 전환해야하거나 계단을 오를 때만 안내하는 말이 많아졌다. 사실 내가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고나서야 깨달은 게 많은데, ‘평지를 걸어갈 때 천천히 걸을 걸’, ‘끊임없이 말을 걸고 안내할 걸’, ‘지금 지나는 길이나 환경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할 걸’ 등등이다.


눈을 완전히 감은 자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는 급격히 말수가 적어져버렸다. 뭔가 말 자체를 잘 못하고 발음도 부정확할 것 같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가장 의외였던 건 계단보다 평지가 훨씬 두려웠다는 점이다. '원래 균형 감각이 약했나?' 싶을 정도로, 안내자에 의해 직선으로 걷고 있는데도 안내자쪽으로 기울어져 걷는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리고 빛에 따라 상당히 감정적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엔 두려웠으나 긴 복도를 지나면서 마지막에는 약간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벅찬 감성도 느껴졌다.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나이 되도록 눈 감고 걷기 조차 해보지 않고 무엇을 공감하려 했는지, 얼마나 얄팍한 오만이었는지 깨달은 순간이랄까? 

현재의 나보다 적극적으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이라는 게 얼마나 여리고 이성 따위로 제어될 수 있다는 허튼 생각을 해왔는지도 새삼 깨달은 것 같다.

결국 타인, 타인과의 믿음, 타인과의 관계 없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나일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