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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story

대화, 무시, 분노, 결사, 예외는 없다... 진짜 없나? - 인권 다큐 [the pipe]

by 뭔가관리하는 jineeya 2011. 5. 28.
일요일(22일) 저녁, 마로니에공원까지 슬슬 걸어가 인권영화제의 마지막 영화를 감상했다.
다큐건 뭐건 간에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었던 독립영화 [혜화,동], [무산일기], [파수꾼] 3편 중에서도 감상한 영화가 [혜화,동] 밖에 없다.
타인의 감상평을 들은 바로는 [파수꾼]까지는 좀 힘들고, [무산일기]정도까지는 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겠지.
요즘엔 전시가 확실히 더 땡긴다.
직접 뭔가 만들어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여튼..
내가 본 영화는 [The Pipe]라는 아일랜드 다큐멘터리로, 한 어촌 마을이 거대 에너지회사와 정부에 대응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05년 어느날, 그들이 왔다.
-우리나라에도 '조개껍데기'모양의 로고로 꽤 알려져있는- 쉘(Shell)사가 로스포트라는 어촌마을에 발을 들인다.
모양은 조개껍데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너지회사인 이 회사의 사업을 볼 때 왠지 시커먼 뻘만 든 죽은 조개가 생각나는 건 별 수 없는 편견이자 일면 사실이다.

그들이 별볼일 없어보이는 이 마을에 발을 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바다 건너 우리야 알 길 없었지만 당시 아일랜드 국민이라면 대충 눈치 챘을 이유, 90년대 아일랜드 서쪽 해변에서 생각지도 못한 가스 자원이 발견되었기 때문.
쉘은 국가적 차원에서 아일랜드의 주요한 수입원이 될 가스 개발이라는 의무이자 부의 원천을 움켜잡았고,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자원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상황인지 요즘 에너지는 과잉소비 중 아닌지 먼저 따져보고 싶지만,
그걸 차치하고라도 안전하고 납득이 가능하게만 개발된다면야 주변 사람들도 크게 시끄럽게 굴 이유까지 없었겠지. 어쩌면 국익에 기여한다고 로스포트같은 작은 마을 사람들조차 TV를 보며 찬사를 보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쉘은 가스를 끌어내야할 위치와 가스를 정제해야할 위치 사이에 엄청난 거리의 파이프를 깔기로 했고, 정부는 이에 대해 충실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경로에 로스포트는 관통당해버렸고, 해변가 어촌민들은 삶의 터전인 육지와 생존의 터전인 바다를 지날 이 오염 유발 가능 물질에 대해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다.

누구나 처음엔 그들과 같이 그들의 뜻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대화를 시도해본다. 그러나 '파이프 통과 반대'라는 몇마디가 오고간 시점부터 어촌민 몇명은 공무집행 방해로 콩밥의 맛(?)부터 맛보는 신세다.
그들은 거대한 벽에 당황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외부인들이 보면 똘똘 뭉쳐도 돌파할 수 있을을까말까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분열하고 서로에게 분노하고 이내 지친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며, 공권력의 폭력에도 단련되어 가며, 도무지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기본을 충실히 기억하는 몇몇은 매일 매일 결사의 의지가 다져져만 간다.

우리나라의 노동 또는 빈민 투쟁에 참여했거나 다큐를 좀 본 사람이라면 왠지 공감되는 많은 모습과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점들이라고나할까?
그들은 그야말로 아일랜드 95%의 국민 중 하나라할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닥치는 위협은 '설마?'라고 지켜보는 사이, 대화는 좀 통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이, 정말 엄청난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돈과 권력에 붙은 이들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평생 경찰은 나를 지켜주는 자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에게 곤봉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며, 서로 안면도 있는 처지인지라 이 사실이 어찌나 충격적인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처음엔 똘똘 뭉칠 수 있지만 이내 강경파와 중도파 등이 갈리는 데, 이로 인해 투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알콩달콩 지내던 주변인들의 사이는 꽤 큰 금이 가버린다. 심지어 돈에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조금의 타협도 용서치 않겠다는 학교 교사 출신 할머니는 이번 투쟁이 끝나면 마치 지역 정치에 한 자리라도 맡을 것 같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 땅 내지는 일터를 지키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마지막까지 힘겹고 뭐든 걸 다 내주어야, 사람들을 향해 찍소리라도 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매번 비슷한 패턴은 매번 '당한다'는 느낌만 강하게 인지시킨다.
사람들은 힘들고 이웃사촌은 큰 폭의 남남으로 돌아서버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사건사고 - 이건 진짜 지독히 걸리기 싫은 사건사고다- 정말 평생 절대 생기지 말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하지만 결과값이 같다면 왜 사람들은 그럼에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가는 걸까? 도대체 이 힘겨운 과정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침묵'할 수 없는 건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재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묵은 현상 유지가 아닌 현상에서의 퇴보이다.

집바닥으로, 삶의 터전인 바다 속으로 오염 가능한 가스 파이프의 통과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면 이 사실에 대한 심각성을 그 누구도 인지할 수 없다.
그리고 의외로 이러한 사례가 쌓이면 쌓일수록 다음의 결사는 분노 수준에서, 무시 수준에서, 그리고 이윽고 대화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
그러니 재수없게도 이런 일이 내 앞에 닥친다면 틀림없이 입을 열고 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사진출처 : 서울인권영화제(http://sarangbang.or.kr/hr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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