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하다보면 방향이 유지되어도 결과물은 본의아니게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항상 끝나기 전까지 과정을 공유하는 건 축제에 올 관람객들에게 스포일러일까 싶어 묵혀두게 되는데 그렇게 묵히고 묵히다가 완전히 잊혀지는 글이나 그림, 생각도 꽤 있다. 천장산 요람을 처음 준비할 때 '이번 구획엔 이런 말을 하겠구나', '이런 말을 듣겠구나' 하며 글적거려본 글들이 있는데 왠지 공유하고 싶어져 올린다.
실제 공연 <천장산산신제> 축문 쓰는데도 도움이 된 듯...
기획의도
사람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산신의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산신을 도와 마을을 두루 살필 마을신이 되는 과정을 명상 순례의 방식으로 진행
주요 구성
1. 산책로 입구 - 순례를 위한 안내
오늘 천장산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구나.
내가 반가움에 모인 사람들이 어여쁘도다.
오늘 나를 찾아 함께 천장산을 알아보려 하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도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 나를 찾아보는 길이
나를 도와 마을 살필 마을신이 되는 길이니
언제 어느 때든 이곳에 올라와
근심과 걱정을 토로하고 기운과 활력을 얻어가리니
그 힘을 부디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도록 사용하길 바라네.
2. 팔각정 - 천장산 이야기
이곳은 천장산, 하늘이 감추어둔 산이지.
하늘이 감추어도 사람들은 잘도 찾아내더군.
북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산이 마치 돌멩이를 꼬치에 꿴 듯하여 돌곶이, 석관이라는 마을을 만들더군.
서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반달을 엎어놓은 모습이라 하여 월곡이라는 마을을 만들었다네.
남쪽과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개성과 경계로 삼기 위해 동네 어귀에 문을 세워 이문이라는 마을을 만들었네.
이곳에 머문 지 어느새 5,000여 년. 하늘이 가리고 사람이 감싼 이 산.
사람끼리 상처 주고 동물신, 식물신 괴로운 적도 있었지만,
꿋꿋이 머물러 생명이 재탄생하고 그대들과 만나니 기쁘도다. 흥이 나는도다.
3. 쉼터 - 천장산에 대한 주민 이야기
(산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주민이 직접 녹음해준 이야기들 수집)
4. 계단과 흙바닥 산길이 만나는 삼각 갈래길 - 산신의 자궁을 상징하는 삼각숲을 통과하며 듣는 산신의 음성
순례의 길에 올랐구나. 명상의 길에 올랐구나.
나에게 한발 다가와서 나와 함께 올라가자.
나의 몸과 같은 땅을 밟고 나의 뼈와 같은 나무들에 기대어
나의 발자국을 길 안내 삼아 생명의 근원에 다가왔구나.
내 안에 들어가기 전에 너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알을 고르자.
너의 알에 너의 소원과 근심과 걱정과 희망을 담아보자.
마을신이 되기 위한 너의 포부를 담아보자.
그러면 내 안에 들어오는 길이 열릴지니.
5. 흙바닥 오르막 - 천장산에 대한 신화
해를 벗 삼아 매가 되었다네. 달을 벗 삼아 올빼미가 되었다네.
나무를 벗 삼아 산을 한바퀴 돌고, 사람을 벗 삼아 마을을 한바퀴 돌고.
소원을 품은 자를 위해 나무 밑동에 알을 심어놓았네.
근심을 품은 자를 위해 하늘에 별을 심어놓았네.
걱정을 품은 자를 위해 바위에 이끼를 심어놓았네.
희망을 품은 자를 위해 꽃에 씨앗을 심어놓았네.
물길이 사방으로 퍼지면 물에 생명을 퍼트리고
산길이 사방으로 퍼지면 멧돼지가 되어 기운을 퍼트리고
나무길이 사방으로 뻗으면 다람쥐가 되어 먹거리를 퍼트리고
사람길이 사방으로 뻗으면 개가 되어 보살핌을 퍼트렸네.
어느날 신령한 두꺼비 천장산에 둥지를 트니 환영의 마음으로 친구를 맞이했네.
기껍게 이리 폴짝 저리 폴짝 움직이니 나무가 들썩이고 산이 들썩이고.
물이 놀란 마음에 땅 속에 숨어버리고
멧돼지 놀란 마음에 기운을 다 써버리고
다람쥐 놀란 마음에 먹거리 숨겨버리고
개 놀란 마음에 두려움을 늘어뜨리니
두꺼비 슬퍼하며 너른 마당에 주저앉아 눈물 흘리네.
울다 울다 몸에 물이 다 없어지니
두꺼비 바위되어 흙과 어울리고 이끼와 속삭이네.
내 안의 모든 자들 나와 같으니
기쁘면 함께 기쁘고 슬프면 함께 슬프도다.
내 비록 생명을 나누어주었으나 사는 모양 죽는 모양 모두 다르니
자신의 모양을 찾아가는 모습이 기특하도다.
6. 절벽바위 - 할메의 토닥토닥
(이민영 작가글)
7. 돌탑 - 마을신으로의 다짐과 기원
(각자의 기원을 남기고 친구들에게 부탁받은 물품을 산신에게 전달)
8. 하산 - 되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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