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주로 다니는 복지관에서 자서전학교를 무사히 수료하였고 그 결과 자서전이 나왔다.
얼마 전 안부 차 전화 걸었을 때
'기자 출신 여자분은 엄청 많이 썼는데 자신은 몇장 안된다',
'오타도 많을텐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넘겨버렸다',
구시렁구시렁 불평불만을 잔뜩 내보인 걸로 봐서는 이 프로젝트가 굉장히 마음에 든거다.
아니나다를까 오늘 복지관이 마련해준 출판기념회에 갔는데
아빠는 간만에 양복을 쫙 빼입었고,
복지관이 마음에 드는 지 5층 식당 구경부터 시켜주고 행사장이 있는 3층으로 이동했으며,
자서전 에필로그에 의하면 팔순 때까지 두툼한 자서전 버전 2를 낼 계획이다.
자서전 내용은 뜻밖에 내가 모르는 내용이 많았다.
중학생 때 419 고려대 집회 나간 것도 몰랐고, 옆에서 총 맞아 죽은 학생을 본 것도 몰랐고,
나에겐 그저그랬던 할아버지가 6.25 때 우마차에 가족 실어 언 한강을 건너 다들 살아남을 수 있었는 지도 몰랐고,
군대 때 통신병이라 편했다 들었는데 해병대 나온지도 몰랐고, 그래도 짧게 끝난 걸 행운이라 생각하는 지도 몰랐고,
엄마가 다니던 회사가 -나는 미쯔비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 토요타인 것도 몰랐고,
매부가 요즘도 골프 경비 내줘서 좋은 지도 몰랐고,
그밖에도 모르거나 잘못 알았던 것 투성이.
누군가가 스스로 반추하며 눌러담은 글은 굳이 혈연이 아니었더라도 흥미진진하기 이를 때 없으나,
확실히 어느 정도 아는 사이기에 머릿속에 쌓아두었던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가며 보는 맛이 더해져 새삼 소장각 돋는 책이었다.
거기에 아닌 척하지만 눈에 띄게 기뻐하는 아빠의 모습까지 합체하니, 아빠는 둘째치고 나야말로 오랜만에 훈훈하고 행복한 반나절을 함께 즐긴 기분이다.
- 아빠는 욕하겠지만 - 딸인 나도 같이 잘 늙어가고 있어서 해가 지날수록 사심없이 숨김없이 너무 하얗게 서로 잘 파악되는 진짜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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