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 덧입혀진 자연의 흔적 > 흐린 비
이보다 쨍할 수 없다. 6월초부터 폭염이 시작된다.
태양의 빛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직시할 수 없었다.
올곧이 직시할 수 있는 건 나를 둘러싼 소소한 반경 뿐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만들고, 나와 같은 사람이 가꾸고, 나와 같은 사람이 망가뜨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복구시키는 공간들.
때로 사람들은 광합성이 필요하다 말하지만 일시적이면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이 만든, 그닥 유쾌하다 생각하지 않는 그곳에서 잘 버틴다.
물론 사람이 만들어도 이내 사라진 공간엔 자연이 깃들고 흔적을 남긴다.
가끔 그곳을 찾은 사람은 격렬히 거부하거나 격하게 애정을 표시한다.
도시에 남은 자연풍화의 흔적은 언제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 사람이 그 무엇을 창조해도 자연은 변화시킬 수 있다.
-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변화는 더욱 촉발된다.
- 사람의 존재와 자연의 존재가 반비례한다면 과연 사람은 필요한 존재인가?
반대로 사람의 마음 속에서 돌아가고 싶은 자연의 품은 사라진 게 아닐까? 또는 인생 1/30 정도의 비중으로 축소되는가?
적당히 음습하고, 적당히 차갑고, 직시해도 눈부시지 않은 LED 등 아래서 매일을 잘 보내면 되는 것일까?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외형이 우리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사이 자연은 변주를 시작한다.
마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많은 형상들이 바른 윤곽선을 잃고 흐린 잔상으로 변하듯이...
[흐린 비] (2016), 캔버스에 복합재료, 970 x 1,622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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