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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리즈] 도철(饕餮)_#04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3.28. 얼마 전 숲을 걷다가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앉아있는 놀라운 나무를 발견했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나무는 페린데우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전 어머니로부터 치명적인 비둘기 나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숲 위를 날던 어머니는 비둘기떼가 잔뜩 앉은 나무를 한그루 발견하였다.곧장 땅으로 내려가 나무로 슬금슬금 다가갔는데 달콤한 열매에 취한 비둘기들은 어머니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는 몽롱한 비둘기들의 눈을 살피고 나서 바로 나무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나무의 그늘에 들어선 순간 격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거대한 포효와 함께 몇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디뎠던 발의 발톱 끝은 시커먼 색으로 물들었다.나무 그늘이 공포를 야기시키긴.. 2015. 7. 24.
[글/시리즈] 도철(饕餮)_#03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3.27. 한참을 벗어나 결국 숲으로 다시 돌아와버렸다.원래 나의 혈족들은 모두 숲을 싫어한다.햇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특히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과 바람의 조합은 쥐약이다.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숲에 들어가는 걸 허용하지 않으셨다. 어느 날인가 이문이 포뢰와 더불어 나를 데리고 숲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필시 먼 곳을 보다가 드넓은 녹색 솜뭉치들의 정체가 궁금해졌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셋은 그리 깊이 발길을 옮기지도 못했다. 숲의 입구에서부터 녹색잎과 나뭇가지들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자 포뢰가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평소 고요하고 잔잔하던 소리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비명이었다.이문을 바라보자 일그러진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결국 이문과 나는 포뢰의 양쪽 어깨.. 2015. 7. 17.
[글/시리즈] 도철(饕餮)_#02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3.19. 나의 이촌(二寸)1)들은 겁쟁이다. 아니, 게으른 건가?순제의 궁 밖으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한 번 몸짓에 천리를 가는 용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황제가 보이는 제 어미에 대한 호의에 자식들이 먼저 반응했다. 앞다투어 경쟁하듯 순제의 심금을 울릴만한 제의를 내뱉었다.'사후를 지켜주겠다', '궁의 파수꾼이 되어주겠다', '독약으로부터 황실을 지켜주겠다', '소리 질러 귀신을 쫓아주겠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쓸모 있을 법한 일을 열심히 찾아댔다. 그렇게 보였다.찰나의 안위를 위해 종마처럼 달렸다. 그렇게 보였다.결과적으로 꽤 바빴다. 그렇게 보였다.어리석었다. 그렇게 보였다. 1) 도철과 이촌들 도철(饕 탐할 도, 餮.. 2015. 7. 9.
[글/시리즈] 도철(饕餮)_#01 - 도철 그리는 작가의 글 그리기 02.05.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눈을 뜨긴 했는데 녹슨 기계마냥 뻑뻑하다. 이게 다 그 순제 놈 때문이다. 나는 쫓겨났다. 그놈에게서, 그놈의 나라에서. 그렇다고 들었다. 여긴 염제 신농의 나라(수메르)보다 북서쪽이다. 땅으로 둘러싸인 안타까운 바다, 중해 근처다. 03.01. 중얼중얼, 웅얼웅얼... 누군가 말을 하고 있다. 그다지 시끄럽진 않는다. 혼자만 말하고 있다. ‘궁~~’ 낮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다른 이들은 신경 쓰이지 않는지 귀 기울이고 있지만, 나의 귀는 ‘궁~’거리는 소리가 압도한다. “빨리!” 드디어 말하는 자 외 누군가가 입을 뗐다. 크진 않지만 빠르고 단호한 목소리다. 역시나, 말하는 자가 당황한다. 또다시 말하는 자만이 말을 이어간다. .. 2015. 7. 3.
[사진] 구름에 갇힌 용 4월에 본 구름 속 용.낙타의 머리와 귀신의 눈, 돼지의 코만이 삐죽 보인다. 낙타의 머리... 풋.요즘 극히 조심해야 한다는 그...그... 불쌍한 녀석들... * 사족(蛇足) - 후한 말기(2세기 경)의 학자 왕부는 용에 관해 구사설(九似設)을 주장했다. 이는 용은 아홉 가지 동물과 닮았다는 설로, 머리는 낙타요 뿔은 사슴, 눈은 귀(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와 닮았다고 한다. (출처 - https://librewiki.net/wiki/%EC%9A%A9) 2015. 6. 15.
용의 자식들을 만나다 용생구자, 앙증맞은 용의 아홉자식들을 만났다.분명 용의 자식들은 용이 되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 괴물들도 섞여있지만,궁궐 처마에서, 종 위에서, 화로에서, 문고리에서, 식기에서, 비석을 짊어지고 임금과 서민을 지키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2015. 4. 25.
도시 ... 정글 ... 호랑이 - 해외애니 [그래피티 호랑이] 도시는 올곧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인간에 의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인간과 그가 만들어낸 무생물 이외의 존재는 극히 드물다(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미생물이 가세하지 않아도 개체수만 생각하면 인간이 미미한 존재일지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이곳을 정글이라 부른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인간의 손을 거부하는, 자연 중에서도 매우 밀도 있는 자연 중 한 곳. 비유의 기원을 알아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도시라는 정글에서 때때로 인간 이외의 생물들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그 이미지만을 따와 소비된다. 그럼에도 도시의 반항과 맞닿아있는 그래피티는 살짝 오묘한 위치에 처해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모방하고 변형하여 지금의 모든 것을 만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발명은 발견이.. 2013.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