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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텔4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힐링 - 백요보(百妖谱) 대체로의 괴이존재를 다루는 판타지물은 일상이 아닌 묘한 풍경 속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아무런 이익과 피해가 없는 관계라는 건 감정이입 없는 건조한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예상외로 판타지의 요괴나 괴물이나 이능존재들은 우리 사회 이웃인 누군가를 대변한다. 평범하게 지낸 다수자라면 겪지 못할 피로함, 분노, 억울함은 소수자의 상황을 인지하게 하고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많은 다수자 중 극히 소수의 매개로 그들은 다수자를 용서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마음 한구석이 안도하기 시작한다. 힐링물은 잘못 파면 현실사회 잔혹극이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한계점이 용서를 기반으로 새로운 모색을 종용한다. 그 안에서 와.. 2023. 10. 25.
보내줄 유령과 남길 유령 - [썸머 고스트] 매년 이맘때 쯤 폐업한 법인의 5년 지난 문서들을 파쇄한다. 파쇄할 때마다 집의 공간이 약간 증가한다. 이 많은 서류들이 종이로 남아있는 걸 보면서 종이를 요구하는 행정 기구와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하는 지 고민한다. 그러나 동시에 곧 없앨 종이들 사이에 아직도 살아있는 기억과 추억은, 없앤다는 짧은 행위 중 잠시 고개를 드러낸다. 앞으로도 사소한 행위나 생각 만으로 꾸준히 드러날 예정이다. [썸머 고스트]에는 유령과 유령을 찾는 산 자가 나타난다. 유령은 너무 사람같고 예상 외로 생과 사를 모두 경험했음에도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삶이 잔뜩 남아 무거워진 생각과 현실은 산 자들의 몫이다. 그리하여 유령은 본의 아니게 산 자들의 컨설턴트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 애니메이.. 2023. 3. 26.
불확실성은 끝자락도 정점... - 불멸의 그대에게 모든 것은 언젠가 멸망한다. 그 마지막 순간에 세상을 위해 만들어놓은 신의 장난. 제멋대로 자발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마치 신과 같은 존재는 삶의 의미는 커녕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기물 하나를 세상에 던져놓았다. 그러나 대부분 신들이 그러하듯 만드는 건 마음대로지만 탄생한 존재가 어떻게 될지는 신들도 모른다. 그러니 만들어놓고 열심히 지켜보고 관찰하고 간섭할 뿐이다. 그들의 마음대로 되길 바라면서 신일지 아닐지 모르는 그 존재 역시 열심히 노력 중이다. 어느 책에선가 지식에 대해 이르길, 불확실성의 끝자락에서 끊임없이 헤매는 모험이라 했다. 확실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지식이 무엇이든 해당 지식의 효용성을 잊은 채 과장되고 흉폭해지기 이를 때 없어질 지도 모른다. 이 애니메이션.. 2022. 2. 21.
그렇게도 당연하게 힐링 - 바라카몬 잘 나가는 전문가, 찾아온 좌절, 인정할 수 없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적, 어쩌다 바뀐 환경, 조건 없는 포용, 과정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길, 그리고 새삼스레 중요해진 커뮤니티. 차도남이 도시에서 어쩌다 시골에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힐링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흐름은 꽤나 예상 가능하다보니, 한두편 보다보면 '또?'인가 싶기도 해서 완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따라서 막장드라마 스토리라인급의 스토리 전개 예상에도 집중은 일사천리, 마음은 몽글몽글, 공감은 구석구석 일으키는 애니메이션이라면 그야말로 훌륭하다 할 만하다. 바라카몬은 그렇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숲의 벌레든 바다의 생선이든 거주하는 집의 쥐든 손으로 잡는 건 불가능하고, 밥해먹을 줄도 모르고, 뒷산에서도 길 잃어도 실족사할지 모르는, 시골마.. 2021.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