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그렇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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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야기_세종대왕

#01 - http://jineeya.tistory.com/658

#02 - http://jineeya.tistory.com/659

#03 - http://jineeya.tistory.com/660

#04 - http://jineeya.tistory.com/661

#05 - http://jineeya.tistory.com/662




#05 / 05




세종 시대 발명되거나 이룩한 성과를 보니, 문득 두가지 의문이 든다.


평생 임금이라는 직업 하나에 매달려 비단 인문학 뿐 아니라 전쟁무기, 경제성을 높이는 각종 장비, 농업용품과 서적, 음악 등 온갖 분야에 모두 신경을 써야 하는 위치. 모든 걸 신경 쓴다는 것은 결국 관리와 조정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한글 자체에 대해선 크게 고민할 여력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반포해야한다는 의지만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역발상이긴 하지만, 극히 다행인 건 세종대왕은 수많은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위치였다는 점이다. 문제는 ‘너’에게 없는 점이라는 사실이다. 

(*너 :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 조사)

숭배의 대상에게 다가가기엔 ’너’는 동원할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처지에 맞춰 세종대왕의 명령에 충실했던 집현전 학자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는 왕이 시켜서 연구했다는 수동성을 지니고 있다. 의지를 가지지 않는 한 ‘나’의 대열에 합류하긴 요원한 일이다.

(* 나 : 특정한 꿈이나 희망을 추구하는 무리를 단수로 지칭함)

‘너’는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종대왕과 집현전 등의 학자들을 모두 하나의 존재로 간주하여 종합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일까?



두번째 의문은 -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 등을 하나의 존재로 간주한다는 전제 하에 - 서적이든 발명품이든 멋진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 역시 비단 문자 창제의 꿈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 단순한 관심이 아니다. 의지를 가지고, 실행력을 갖추고,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 것인가? 나의 삶 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돌아보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



애시당초 ‘너’는 글자를 만들고 싶은걸까?

세종대왕과 같은 ‘너’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현실을 외면한 채 ‘나’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던 것 뿐일까?
















 '너'의 이야기_세종대왕

#01 - http://jineeya.tistory.com/658

#02 - http://jineeya.tistory.com/659

#03 - http://jineeya.tistory.com/660

#04 - http://jineeya.tistory.com/661

#05 - http://jineeya.tistory.com/662


#01 / 05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 나 : 특정한 꿈이나 희망을 추구하는 무리를 단수로 지칭함)


부족한 잠로 핏발 선 눈동자들이 튀어나올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 서보길 잘했다고 생각해본다.

(*새종대왕 :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570여년전 훈민정음 창제 및 반포를 주도하였다. 현대 경제계 분석에 의하면 당시 저작권이 적용되었을 경우 대한민국 전체 자신에 맞먹는 부의 축적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하나 오히려 지금과 같은 대중적 확신은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당시 훈민정음의 창제는 순수 개인 창작이 아닌 다수 학자들과의 공동창작임이 각종 사료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세종대왕은 당시 최고권력자로서의 힘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개인 명의로 반포했으며 전국 각지 도서산간에까지 관차원으로 반포를 알리는 공지를 게시토록 하였다.

그로 인해 현재에 이르러 한글을 대표하는 1인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후대에까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다. 다만 일부 한글학자들만이 당시 학자층의 기여에 대한 복권 차원에서의 집단적 창제과정 규명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갖게 된 꿈은 '나'의 고유한 글자를 만들고 싶다는 것. '나'에게 최적화된, '나'를 반영할 수 있는, '나'만의 글자, 그것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세종대왕상 뒷편으로 돌아 양 옆의 문으로 들어가면 끝없이 이어질 것 만 같은 계단이 펼쳐진다. 그러나 피곤한 '너'는 내려갈 수 있다. 그는 '너'의 유일한 숭배 대상이자 미래다. 

(*너 : 자신을 지칭하는 1인칭 조사)

그를 영접하러 내려가는 길은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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